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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줄면 한국영화 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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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문화관광부 측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가 있은 뒤 찬반 논쟁이 뜨겁다. 적지 않은 이들이 한.미 투자협정(BIT),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위해 영화계가 양보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어디서도 한.미 BIT나 FTA가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설득력 있는 논리를 본 바 없다. 한.미 BIT의 본질은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적게 잡아 800억달러가 넘는 평가차익을 거둬들인 투기자본의 무한자유를 보장해주는, 그것도 불평등한 투기협정이라는 데 있다. 나아가 미국과 BIT에 서명한 45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 평균은 2084달러(2001년 기준)에 불과하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외치는 참여정부가 국민소득 2000달러 나라들이 체결하는 투자협정에 목을 매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2003년 발효된 한.일 BIT 이후 일본의 대한(對韓) 직접투자가 3분의 1로 격감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수천개에 달하는 전 세계 BIT를 대상으로 한 세계은행의 보고서조차 BIT의 투자유치 효과에 대해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해 한 관변 연구소에서 BIT 체결시 '외국인직접투자(FDI) 최대 70억달러, 국내총생산(GDP) 3% 증가'라는 연구를 내놓은 바 있지만, 이는 정책 결정자의 구미에 맞게 주문 생산된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BIT를 체결해야 FTA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것 또한 거짓말이다. 지난해와 올해 미국과 FTA를 체결한 호주.싱가포르.칠레 그 어느 나라도 미국과 BIT를 맺은 바 없다. 설사 FTA를 체결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한.미 FTA가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미 국제무역위원회(USITC) 조사에 따르면 한.미 FTA 체결시 4년에 걸쳐 미국의 대한 수출은 54%, 한국의 대미 수출은 21%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 추정치를 2002년 대미 무역수지(230억원 수입 대 328억원 수출)에 적용해보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98억달러에서 53억달러로 45억달러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도대체 이 경제전쟁 시대에 무역흑자 감소를 위해 그것도 잘나가는 업종을 죽여가면서 정책을 구상하는 나라가 있을까. 또 한국영화의 성장은 스크린쿼터 때문이라기보다 시장개방 덕분이라고 한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지난 10여년 간의 자료를 근거로 분석해본 결과 현행 146일 기준, 영화시장 규모 4조4000억원(2002년) 기준으로 쿼터 하루 축소시 328억원, 10일 축소시 3084억원, 50일 축소시 1조1000억원 정도 영화시장 규모가 감소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쿼터 축소에 대한 보완책으로 연동제 말도 나온다. 쉽게 말해 향후 한국 영화 점유율이 심각하게 하락할 때 쿼터제를 재시행하겠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이러한 구상은 BIT와 FTA, 나아가 현재의 국제통상규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발상이다. 현행 대통령령으로 돼 있는 쿼터 일수를 수정해 한.미 BIT 말미의 예외 리스트에 포함시키면 수년을 끌어온 BIT 협상은 종결된다. 그런데 이 예외 조항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스탠드 스틸(stand still)' 즉 예외조항 추가등재 금지이고, 둘째는 '롤 백(roll back)'으로 향후 예외 리스트의 변경은 오로지 삭제를 통해서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즉 한번 정해져 예외 리스트에 오른 쿼터 일수는 오직 삭제, 곧 철폐를 통해서만 변경될 수 있다는 말이다. BIT가 체결된다면 연동제는 아예 불가능하다.

BIT는 20년간 유효하다.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면 아마 그렇게 스크린쿼터와 더불어 한국영화 산업도 20년에 걸친 안락사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그것도 할리우드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이유 때문에.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