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N워드는 곧 ‘검둥이’로 통했던 미국인의 어휘사전에 최근 변화가 생겼다. “워싱턴이 N워드 해법을 쓰길 두려워하고 있다”는 올 초 폴 크루그먼의 칼럼에서처럼 ‘국유화(nationalization)’를 에둘러 표현하는 용법이 추가된 거다. ‘국유화=사회주의=악’이란 등식이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미국인들이니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꺼림칙했나 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앞에 장사 없는 걸 어쩌랴. 미국 역시 영국·프랑스·독일 등을 본받아 최대 은행 씨티그룹을 사실상 국유화하고 만다. N워드만 들어도 진저리치는 보수 진영은 기다렸다는 듯 “‘오바마 동무’가 ‘미 사회주의 합중국’을 만들려 한다”며 아우성이다.
어느 나라건 시도 때도 없이 제 잇속만 챙기려 드는 정치권의 행태가 꼴사납다. 물론 국유화가 정답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욕먹을 게 뻔한 일을 해야 할 만큼 미국 경제가 엉망인 건 누구나 안다. 실업률이고 성장률이고 통상적인 경기침체(recession) 수준을 넘었다는 불길한 신호가 쏟아지는 판 아닌가. 그래서 N워드에 이어 ‘D워드(D-word)’마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무개가 D워드를 시사했다”는 헤드라인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끔찍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이후 금기어가 돼버린 불황(depression)을 빗대는 것이다.
카터 정부 때 백악관 경제고문 앨프리드 칸은 불황을 언급했다 예서 제서 지적이 빗발치자 “우린 45년 만에 최악의 바나나를 맞고 있다”고 뜬금없는 말로 둘러댔다 한다. ‘바나나’든 ‘D워드’든 말 돌리기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갈 수 있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을까. 위기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말장난으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는 그네들 모양새가 딱하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