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경제 위기 속 요즘 직장인들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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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의 사내 복지를 담당하는 인재지원팀 김태룡 과장은 얼마 전 고개를 갸우뚱했다.

올 들어 영어·중국어 회화 등 사내 무료 강좌 인원이 예상외로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뿐이 아니다. 사내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직원도 증가했고, 통근버스와 구내식당 이용자도 눈에 띄게 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 정보미(29·여) 대리의 경우도 올 들어 어학 공부와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정 대리는 “지난해 말부터 불어닥친 세계적 경기 침체로 여기저기에서 어렵다는 소리가 터져나와 저절로 그런 결심을 하게 되더라”며 “지난해 초에 가입한 주식형 펀드가 반 토막 나는 바람에 개인적으로 위기감을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점심시간에는 무료로 개설된 스페인어 강좌를 듣고 통근버스와 직원 식당을 단골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어 강좌도 집 근처 학원을 먼저 알아봤지만 한 달에 15만원이라는 말에 사내 무료 강좌를 듣게 됐다. 퇴근 뒤에도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가량 운동을 하고 집으로 간다. 그는 여직원보다 남자 직원이 더 민감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구주영업관리팀에 근무하는 정우영(32) 대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요즘 사이버 사내 강좌를 듣고 있다.

정 대리는 “경기 침체 때 직장인의 최고 재테크는 절약과 자기 계발뿐”이라며 “지출은 무조건 줄이고 실력은 무조건 쌓자는 분위기로 회사가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기 침체가 깊어지면서 대부분의 직장인이 잘릴까봐 ‘비굴 모드’로 바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런 절박한 분위기 때문에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자기 계발 노력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대상선의 사내 강좌 수강생은 2월 말 기준 123명으로 지난해 같은 때(31명)보다 무려 네 배 가까이로 늘었다. 상대적으로 경제사정이 괜찮았던 지난해와 직장인들이 위기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올해를 비교했을 때 온도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각종 자격증 대비 무료 과정 등이 있는 사이버 강좌도 602명으로 지난해(336명)에 비해 신청자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사이버 강좌는 한 사람이 2개 과목 이상 들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본사 직원 603명 가운데 거의 전부가 자기 계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내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직원은 등록 인원이 올해 152명으로 지난해(89명)에 비해 60% 이상 늘었다. 통근버스 이용자와 구내식당을 이용하며 절약하는 직원들도 20~30%씩 늘었다.

인재지원팀 김 과장은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직원들의 라이프 사이클에 일부 변화가 있겠지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클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딜로이트컨설팅의 김경준 부사장은 “경제위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직장인의 위기의식 때문으로 분석된다”며 “한마디로 차일피일 미뤘던 어학 공부 등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이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직장인이 운동을 시작하는 것도 이럴 때일수록 ‘자산은 몸뿐’이라는 생각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은 이 같은 직원들의 태도 변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인재개발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이 회사 홍보팀의 최필규 상무는 “각종 사내 무료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직원 수가 증가할수록 회사로서는 비용 부담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이익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실제로 최근 직원들의 애사심이 더 높아져 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업무효율도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김시래·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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