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는 징검다리를 건넌다.
선발투수는 매게임 1백개 정도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수준높은 메이저리그라면 그 징검다리는 폭이 매우 넓고 미끄럽다.
'아차!' 하는 찰나의 순간에 미끄러지고 만다.
실투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박은 이날 정확히 1백개의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 가운데 딱 한번 미끄러졌다.
14번째 다리였다.
배리 본즈에게 던진 시속 1백49㎞짜리 직구였다.
메이저리그 최고타자 본즈가 이런 실투를 놓칠리 없다.
통한의 2점홈런이었다.
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는 18.44.시속 1백49㎞짜리 공이 홈플레이트에 이르는데는 약 0.445초가 걸린다는 계산이다.
이 찰나의 순간에 승패가 엇갈리는 것이다.
박은 타순이 한바퀴 돈 뒤부터 변화구의 빈도를 높였다.
커브의 제구력이 좋았고 왼손타자를 유인하는 투심패스트볼도 끝이 착착 가라앉았다.
올해 등판한 경기가운데 변화구 구사가 가장 많았다.
박은 6회말 5번 제프 켄트를 삼진으로 잡아낸 뒤 마운드에서 뛰어오르다 잠시 멈칫했다.
왼쪽 발목이 아픈 탓이었다.
왼발을 내디딘 뒤 팔을 채는 순간 체중이 발목으로 전달될 때 힘을 받쳐주다가 균형이 잠깐 무너진 탓이다.
박은 지난 5월17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원정경기 이후 "왼쪽 발목이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다" 고 말해왔다.
심한 정도는 아니라는게 본인의 얘기다.
그러나 박은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세심한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다.
그만큼 몸을 아낀다.
이날 경기는 양팀에 월드시리즈와 맞먹는 비중의 경기였다.
박찬호도 그 중요성을 알고 준비를 많이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순간의 실투가 결국 패전을 불렀다.
구위는 박이 앞섰으나 상대 커크 리이터에게 승리가 돌아간 것도 위기에서의 노련함, 실투를 없애는 능력에서 박이 뒤졌기 때문이다.
이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