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섭著 '디자인과 키치' 일상생활속 사례 소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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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사람들은 우아한 디자인의 고급차를 왜 살까. 단순히 멋있고 안전하며 출력이 높기 때문만일까. 중산층임을 스스로 확인하거나 남에게 과시하고 싶다는 욕구도 구입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렇듯 지금 소비행위는 단순히 써서 없애버리는 개념을 넘어 소비자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욕구를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소비를 통해 인간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 표현한다.

서울여대 강사인 오창섭씨가 쓴 '디자인과 키치 - 수용의 관점에서 디자인 보기' 는 디자인의 소비를 통해 일상적인 삶의 사회.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토마토刊) .저자는 "디자인은 미술과 상품이 산업이라는 장에서 만나서 상품가치를 높이는 창조적 행위" 라는 종래의 생산자적 시각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디자인이 사용되는 양식에 촛점을 맞춘다.

그는 특히 소비자가 디자인을 생산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각기 나름대로의 다른 의미나 목적으로 소비하는데 주목한다.

예로 부채는 원래 의도된 기능 말고도 햇빛을 가리거나 심지어 등을 긁는데도 이용되고 있다.

아울러 남대문 상인들이 노천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연탄난로를 붙여 개조한 난방의자에서 보듯이 사용자가 목적에 맞춰 스스로 디자인이나 개조를 하는 일도 많다.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나 유명기업의 상품이 아닌, 삶의 한 부분 속에 녹아든 이러한 디자인의 재활용 양상을 다양한 국내의 예를 들어 살핌으로써 디자인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진품의 가치나 효과를 모방해 새로운 생활 디자인을 추구하는 '키치' 적인 디자인 현상을 국내에서 다수 찾아내 제시함으로써 디자인이 사람들의 생각을 담고 전하는 그릇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정림사지 5층석탑을 모방한 공중전화 박스, 벤츠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흉내낸 중형차, 지프차처럼 개조한 소형차, 한옥 형태의 개집, 여자 다리 모양의 호두까개, 마패 모양의 합격엿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런 키치적 디자인에서 각기 향수 (鄕愁).과시욕구.대리만족.놀이.성적 유희 (性的 遊戱).풍자라는 개념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는 키치적 디자인의 소비는 디자인이 담고있는 사회.문화적 의미와 가치, 즉 기호의 소비라고 결론짓는다.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출신의 공업디자이너인 저자는 96년 서울대에 제출한 학위논문 '키치 현상을 통해 본 제품의 사회.문화적 기능' 을 토대로 다양한 사진자료와 내용을 보충해 책을 펴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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