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뇌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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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베이징(北京) 천안문 광장 부근에 있는 유리창(琉璃廠)은 청(淸)대에 들어선 뒤 지금까지 각종 골동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베이징에 들렀던 조선의 선비들은 대개 이곳에서 서적과 그림 등을 구매하기에 바빴다. 지금도 이곳에는 상당수의 점포들이 남아 관광객을 맞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곳은 뇌물이 은밀하게 오가는 장소였다. 우선 그 기법이 교묘해 눈길을 끈다. 청나라 말엽에 행해지던 뇌물 수수의 방법이다. 베이징의 고관에게 뭔가를 안겨야 하는 사람들은 이곳의 점포를 기웃거린다.

눈치 빠른 주인이 먼저 “어느 관료에게 얼마치의 선물을 바치려느냐”고 묻는다. 기웃거리던 손님은 그제서야 고관의 이름과 상납하려는 뇌물의 액수를 말한다. 주인은 객으로부터 돈을 받은 뒤 그가 언급한 고관의 집을 찾아간다.

주인은 그 액수에 대강 견줄 만한 골동품이나 서화를 고관의 집에서 사들인다. 점포 주인은 다시 제 가게로 돌아와 고관 집의 골동품을 객에게 전달한다. 뇌물을 바치려 했던 당초의 객은 주인이 건넨 골동품을 들고 고관을 찾아가 ‘그 물건 그대로’ 상납하는 형식을 취한다.

고관은 자신이 아끼는 골동품에 준하는 돈을 뇌물로 챙긴다. 뇌물을 바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칫 고관의 취향에 맞지 않는 선물을 들고 갈 우려가 없어서 좋다. 가게 주인이야 그 중간에서 차액을 알아서 챙기니 남는 장사다.

청대 지방관료나 일반인이 수도의 중앙부처 관리에게 뇌물을 상납하는 관례가 있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시라고 바치는 게 ‘탄경(炭敬)’, 더운 여름에 시원하시라고 건네는 것은 ‘빙경(氷敬)’이다. 설이나 추석 등 절기에 바치는 것은 ‘절경(節敬)’, 헤어지는 게 섭섭하다고 바치면 ‘별경(別敬)’이다. 사람 공경하라고 쓰는 경(敬)이라는 글자가 뇌물로 둔갑하니 우습다. 어쨌든 이런 풍조 속에서 유리창의 뇌물과 골동품은 서로 돌고 돌았다.

서울 강남 지역 경찰관들이 안마시술소 업주들과 내연 관계를 맺거나, 이른바 ‘관처리’라는 금품을 업주들에게서 받았다는 소식을 듣노라면 뇌물에 관해서는 부패가 횡행한 청나라 말이나 지금의 대한민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에서 오래 근무한 경찰관 500여 명을 다른 곳으로 전보한다는 게 서울경찰청이 내놓은 해법이다. 돈 받지 않은 경찰관들이 우선 억울하겠다. 뇌물받은 경찰관 일부는 전보 조치로 구제하겠다는 발상인가. 경찰이 또 단추를 잘못 꿰고 있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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