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치학회 서울대회 릴레이 석학대담]셰보르스키 對 최장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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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인 아담 셰보르스키 교수 (미국 뉴욕대) 와 한국 민주주의론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최장집 교수 (고려대) 사이에 이뤄진 네번째 릴레이 대담의 주제는 '한국의 민주화 앞으로의 문제진단' 이었다.

아담 셰보르스키 교수는 제3세계 민주화 과정을 '합리적 전략이론' 과 통계학을 통해 보다 예측가능한 수준으로 정착시킨 폴랜드 출신의 미국 정치학자다.

▶최장집 = 이번 세계정치학회에서 발표되는 논문주제에서 드러나듯이 민주주의 문제는 80년대 이래 정치학의 중심적 연구분야이다.

민주화 이론의 최근 전개에서 주요 관심사는 어떤 것인가.

▶셰보르스키 = 6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민주화 물결이 일면서 처음에는 민주화가 주요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곧바로 민주주의를 실현시켜줄 것으로 믿었던 환상이 깨어지면서 이행 이후 어떻게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민주주의 질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 = 한국에서도 문민정부의 수립등 민주주의 이행이 이뤄졌고 90년대 들어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어느 정도 진척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민주주의에 대해 가졌던 기대가 깨지면서 실망감도 크다.

▶셰보 = 독재하에서는 보통 민주화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그러나 막상 민주주의 이행이 완료되고 나서도 정치적.사회경제적 문제들은 상존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는가를 결정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정치참여를 확대하여 스스로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집합적 결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며, 그러한 결정의 결과가 사회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참여 확대와 사회경제의 발전, 이 두가지를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가 민주주의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최 = 지금 세계는 시장지향적 특성이 강하여 경제의 합리성과 역동성이 민주주의 원리를 압도하는 실정이다.

민주주의 방법을 통해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가 야기하는 문제점들에 대응하고 이들을 제대로 개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셰보 = 정치와 경제는 서로에 대해 일정한 제약을 부과한다.

민주주의 정부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경제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에 국민들은 그 정책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적소유와 시장원리가 국민주권에 의해 제약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국제정치경제에 의해 제약되고 영향받기 마련이다.

▶최 = 민주주의 하에서 경제적 개혁을 이루려면 일정기간 동안 성장의 둔화를 감내하겠다는 결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민주화는 대단히 높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성장의 둔화에 별로 참을성이 없다.

▶셰보 = 1960~90년 사이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 정도는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세계적 기준에서 보면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성장율이 낮아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은 최근 연간 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도 경제침체라고 말하고 있다.

OECD국가 중 81년 이래 이같은 고도성장을 이룬 경우는 없었다.

한국은 장기적으로 볼 때 성장률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빨리 인식해야 한다.

오히려 한국이 현단계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실업문제.가족파괴현상.사회복지체제 같은 것이다.

▶최 =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총파업 끝에 지난 3월 노동법이 개정됐다.

이 노동법 개정의 핵심내용 중 하나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기 위한 정리해고제다.

실업문제를 사회보장정책을 통해 보호하는 방향이 아니라 반대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 맡겼다.

이로 인해 한국의 신중산층은 그동안 종신고용제로 회사에 충성하면서 고도성장을 이뤄냈는데, 이제 그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됐다.

▶셰보 =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경제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회복지가 없는 가운데 실업이 급증하면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노조와 회사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회사는 변화에 훨씬 적응을 잘 한다.

▶최 =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 어떤 제도를 갖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한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정치현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3권분립과 관련 의회중심제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와 같은 선거방법이 논의되야 한다고 보는데…. ▶셰보 = 이론적으로만 볼 때 경제성장과 권력의 안정을 실현하는데 내각제가 우월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각제로 바꾸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제라도 의사소통의 투명한 교환이 이뤄지고 결정과정이 투명하면 좋은 것 아닌가.

특히 한국의 경우 지역감정 때문에 비례대표제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독일.일본.이탈리아에서처럼 의원의 반은 지역선거에서, 나머지 반은 전국적인 정당투표에 의한 비례대표로 선출할 경우 대표성과 통치력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정리 =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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