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솔빛 파격적 실험 수업…국어시간에 록밴드 공연장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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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발돋움으로 동그란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 보니 수업이 한창이다.

그런데 교단에 서서 중학교 1학년 국어과목을 강의하는 남자 선생님이 조금 어색해 보인다.

검정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거기에 머리는 장발이고 바지 호주머니춤에는 삐삐가 꽂혀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말도 색다르다.

"잡생각이 많고 잘 놀아야 국어를 잘해요. " 무슨 소리인가.

"자, 정신 집중해 - 셋째줄에 밑줄 긋고 화살표를 - 이것은 반드시 시험에 나오니까 무조건 외워라" 등의 얘기가 없는 수업이라니.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케케묵은 공부를 시키고 싶지가 않은 모양이다.

거듭 강조하는 말.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해야 상상력이 늘고 재미있게 놀아야 창의력이 길러진다.

알았죠. "

선생님은 문화평론가이자 신촌의 언더그라운드 밴드인 '허벅지밴드' 의 리더인 안영노 (31) .이 광경이 벌어진 곳은 서울 신도림동에 있는 솔빛아카데미학원 건물 1층의 방송 스튜디오. 교육 시스템 개발회사인 ㈜솔빛이 지난 여름방학 동안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낮 12시에 생방송으로 전국 1백여개 학원 2천여 수강생들에게 방영했던 국어과 실험수업 장면이다.

다시 수업 속으로 들어가보자. 교실 안의 대형 텔레비전에 갑자기 홍대앞 라이브클럽에서 벌어졌던 록밴드 '배드 보이스' 의 공연장면이 나온다.

"자 여러분, 어떤 느낌이 들죠?" 선생님이 묻자 아이들은 답한다.

"경쾌하고 즐거워요. "

"어두운데 신나요. "

"머리가 아파요. "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여러분이 서태지나 클론.H.O.T 등 방송에 나오는 가수들만 봐서 이런 장면은 낯설죠. 하지만 선생님은 오히려 이런 언더그라운드 밴드가 더욱 친숙해요. 이런 것을 두고 서로의 언어가 문화적으로, 음악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이에요. "

이날의 수업주제는 '언어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 .중학교 1학년에게 언어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라이브 공연을 녹화한 비디오뿐만 아니라 도시를 만들어 가는 내용의 전자오락게임의 화면, 길거리를 촬영한 비디오등 다양한 영상매체가 동원된다.

수업 막바지에 선생님은 교재에 나온 문제풀이 숙제를 낸다.

숙제도 뭔가 다르다.

"문제풀이의 답은 한가지가 아닙니다.

답이 없을 수도 있고 선생님과 함께 여러분이 만들어갈 수도 있어요. "

예습도 하라고 요구한다.

교재 안의 그림을 보되 절대 글은 읽지 말고 다음 시간에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해보라는 것이다.

이 실험수업은 안영노씨와 시나리오 작가 김종식 (31) 씨, 비평가 주상우 (31) 씨 세사람의 작품이다.

이들은 3년전부터 10대들에게 공부가 속박이 아닌 재미있는 놀이로 느껴지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왔다.

그러다 3개월전 ㈜솔빛에서 21세기형 수업방식을 연구하던 후배 홍지영 (25) 씨를 만나면서 '교과서 접기놀이' 라는 이름의 이 수업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골라 접어둔 다음 만화.영화.전자게임 등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덧붙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 과목을 스스로 배운다는 뜻이다.

안씨는 "이를 통해 아이들의 개성을 살리고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즐겁게 함께 노는 형식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어떤 반응일까. 송선옥 (신도림중 1년) 양은 "학교수업에 비하면 새로워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너무 파격적이라서 어리둥절해요" 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획자 홍지영씨는 "올 겨울방학에는 이같은 실험수업을 사회와 과학과목으로 확대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미래형 멀티미디어 교육은 막이 오른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XT급 컴퓨터가 대부분인 우리의 학교교육 인프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고리타분한 의식구조는 더 걸림돌. 그래서 올 겨울 다시 모습을 드러낼 실험교육의 실체가 궁금하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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