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시아드대회 개회식…혼돈에서 핀 화합의 합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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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오후 11시. 시칠리아의 서부도시 마르살라 태생의 테너 피에트로 발로가 시칠리안 심포니의 반주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의 아리아를 열창할 때 경기장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순간 시칠리아 제일의 도시 팔레르모시 북쪽 해안에 지어진 축구 전용구장 파보리타 코뮤날레 스타디움은 거대한 노천극장으로 바뀌었다.

관중들은 발로가 부르는 '돌아오라 소렌토로' '오 솔레미오' 를 따라 부르며 열광했다.

사르데냐 방향으로 우뚝 솟은 바위산 펠리그리노의 암벽을 푸른 레이저 조명이 밝히는 가운데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진 또 한 무리의 레이저 조명이 경기장면을 환영처럼 펼쳐 보였다.

현지시간 오후8시 (한국시간 오전3시)에 시작된 개막식이 비로소 완성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개막식이 전하는 메시지는 마침내 뚜렷해졌다.

그것은 '혼돈에서 화합으로' '자유분방함에서 자유로운 지성으로' '작은 섬 시칠리아에서 세계를 향하여' 가는 평화의 메시지였다.

지중해의 오렌지빛 태양이 지고 구름에 싸인 달이 오를 무렵 언제인지 모르게 시작된 식전행사는 혼돈만을 느끼게 했다.

그렇기에 완성된 개막식의 윤곽은 더욱 뚜렷해 보였다.

경기장 세곳에 마련된 가설무대에서 가라테와 에어로빅 시범, 주변을 시칠리아풍의 장식으로 단장한 당나귀와 말이 축전행렬을 이끄는 것이 식전행사의 전부였다.

입장식도 초라했다.

Corea로 국명을 표기, 30번째로 입장한 한국과 호주.브라질.중국.일본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기수와 임원 몇명만 참가시켰기 때문이다.

관중들은 행사와 무관하게 파도응원을 즐기며 따로 놀았다.

개막식이 시작돼 국제대학스포츠연맹 (FISU) 회장 프리모 네비올로와 조직위원장 니노 스트라노가 거듭 축사를 읽었지만 관중들은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파도응원과 뜻모를 함성, 그리고 혼돈의 극한!

그러나 해군의장대 6명의 대회기 게양에 이어 이탈리아의 육상스타 아나리타 신도티가 성화를 점화한 뒤 체조스타 유리 케키가 선수선서를 하는 순간 혼돈은 사라지고 정적 속에 질서가 자리잡았다.

혼돈 속에서 정결한 질서를 추출한 개막식 분위기는 시칠리안 심포니가 저 유명한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 의 간주곡을 연주, 식후행사의 시작을 알리면서 화합과 평화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식후 행사의 피날레는 아랍풍이 역력한 시칠리아 전통칼춤. 살과 피가 난비하는 전투장면을 묘사한 춤이지만 칼과 칼은 서로 부딪쳐 절묘한 화음과 청신한 리듬을 빚어냈다.

비로소 관중들은 유니버시아드의 메시지를 알아차렸다.

스포츠를 통한 경쟁에서 젊은이들의 화해와 하나됨을 추구하는 유니버시아드의 숭고한 이념은 자연스럽게 관중들의 가슴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파보리타 코뮤날레 스타디움에서 무려 4시간동안 계속된 개막식은 97시칠리아유니버시아드의 전과정을 축약해 보여줬다.

그곳에는 감동과 평화가 있었고 이탈리아인들 특유의 막힘없는 자유가 있었다.

팔레르모 (이탈리아)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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