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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 막는 데 한국이 앞장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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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6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로, 콩고·세네갈·볼리비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 농경지와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역진흥 정책을 추구했다.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5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은 세계 제일의 조선국,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 세계 11위의 수출대국으로 우뚝 섰다.

상품 무역뿐 아니라 노동인구의 63%를 고용하는 서비스 부문도 수출신화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서비스 수출은 27% 증가했으며, 특히 금융서비스(63%)의 성장이 눈부셨다. 또 무역은 2007년 한국의 1인당 GDP를 2만 달러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의 밑바탕에는 생산적이며 창조적인 한국의 노동력과 견실한 정부 정책이 있다. 이에 더해 다자무역 체제가 한국의 성공에 버팀목으로 작용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자무역 체제의 핵심인 국제통상규범은 한국의 수출입 업체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법적 체제를 제공해 왔다.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세계무역기구(WTO)가 관장하는 다자무역 체제는 지속적으로 통상 개방을 추구해 한국 기업이 안심하고 무역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세계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9년 세계경제가 ‘0% 성장’을 할 것이며 세계무역 규모도 2.8%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소비와 투자 촉진을 목표로 하는 범세계적인 공조가 시급하다. 공조 없이 국가별로 불균형적인 성장이 나타나면 결국 보호무역주의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WTO는 지역개발 은행과 민간은행, 개발 관련 국제기구와 협력해 250억 달러로 예상되는 무역금융 부족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무역금융 여건은 지난해 11월과 비교해 악화되고 있다.

 각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세계무역에 큰 장벽이 될 것이다. 2월 초 제네바에서 열린 WTO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보호무역 정책 확산이 자국의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WTO 보고서에 따르면 현 경제 위기가 불거진 이후 회원국들은 관세를 높이고, 수입업자에게 번거로운 행정적 절차를 요구하거나 반덤핑 조치를 취하는 등 자유무역을 제한하는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물론 전반적으론 회원국들이 이러한 수단의 적용을 자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호무역 조치에 대한 압력은 더욱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WTO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인 투명성 추구를 이루어 내고자 하는 게 WTO 보고서의 목적이다. 또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 속에서 등장한 보호무역조치들을 합리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각국 정책 결정자가 직면하고 있는 보호무역 장벽의 확산 움직임에 의연히 대처하고자 하는 것이다.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하는 국가는 결국 일자리 감소를 겪게 될 것이다. 특히 무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국가들이 보호무역을 추진하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은 다자무역 체제를 지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WTO 도하라운드의 성공적 타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WTO 도하라운드의 타결은 153개 WTO 회원국, 특히 개발도상국들이 더 공정한 세계무역 질서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올 4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의장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이 보호주의 확산에 대응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또 WTO 도하라운드 타결이야말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는 굳건한 토대이며, 세계 지도자들이 공조한다면 어떠한 경제 위기라도 극복할 수 있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한국은 항상 놀라운 복원력을 보여줬다. 그동안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된 다자무역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이 국제적 리더로서 책임 있는 역량을 발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