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악보없이 노래하는 天上의 음악가들…인간과 새의 '음악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찌르레기, 34크로이처" 모차르트는 1784년 5월27일 시장에서 새 한마리를 사고 지출내역을 가계부에 이렇게 적었다.

그 맞은편 페이지에는 이 새에게 배워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G장조 K.453의 피날레 악장 첫부분이 적혀 있다.

새소리에 영감을 받은 작곡가는 모차르트뿐이 아니다.

자연의 소리를 음악에 담기를 즐겨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작곡가 클레망 잔느캥에서부터 20세기의 올리비에 메시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곡가들이 새의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

자연의 소리중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꼽으라면 단연 새소리를 들 수 있다.

여행의 자유가 없었던 중세인들에게 새는 '자유' 의 상징이었다.

또 중세 교회음악을 집대성한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대한 전설이 말해주듯 새는 '조물주의 신성한 음악을 인간에게 계시해주는 영물 (靈物)' 이었다.

새의 지저귐을 '운다' 라고 표현한 우리네 조상들과는 달리 서양인들은 새소리를 '아름다운 한편의 노래' 로 받아들였다.

새는 언제 노래하는 것일까.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음악의 기원을 새의 울음소리에서 찾았다.

수컷새가 암컷새를 유혹하기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데, 이것이 음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새들이 노래하는 것은 종족 보존의 본능 외에도 다른 새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고' 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참새나 갈가마귀.비둘기 같이 떼지어 다니는 새들은 시끄럽게 수다를 떨 뿐이지 노래하지는 않는다.

새가 노래하는 것은 고독하다는 증거다.

새 중에서도 지빠귀과의 나이팅게일은 '새의 베토벤' 이라 불릴 정도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백조는 죽기 직전 일생에 단 한번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프리마돈나의 고별 독창회,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을 가리켜 '백조의 노래' 라고 일컫는 것일까. 새의 노래소리에 매력을 느낀 서양인들은 9세기초부터 새소리를 내는 악기를 고안해냈다.

새소리를 내는 악기를 가리켜 '버드 오르간 (bird organ)' 이라고 통칭한다.

철학자 레오는 비잔틴의 황제 테오빌 이코노마크를 위해 나무와 새를 그려넣은 자동악기 2대를 만들어 바쳤다.

프랑스에서는 집에서 기르는 새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기 위해 피온느 (pionne) 라는 악기가 사용되었다.

또 파리의 시계제조공 로베르 로뱅은 마리 앙트와네트를 위해 작은 금속 파이프로 노래하는 카나리아 악기를 만들었다.

새소리를 모방한 악기 중에서 지금까지 오케스트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는 '버드 휘슬 (bird - whistle)' 이 있다.

미국 작곡가 월링포드 리거 (1885~1961) 와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 (1908~92) 의 취미는 새소리를 오선지에 채보하는 것이었다.

특히 메시앙은 어렸을 때부터 새소리를 매우 좋아했고 틈만 나면 야외에 나가 새소리를 악보에 담았다.

프랑스 조류학회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새들의 심연' '새의 박물지' '이국정취의 새들' '새들의 아침인사' 등의 작품을 남겼다.

메시앙의 스승 폴 뒤카는 평소 "새처럼 훌륭한 작곡 선생은 없다" 고 강조했다.

메시앙은 새를 가리켜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음악가" 라고 말했다.

그에게 새소리는 단순한 음악적 장식물이 아니라 음악세계의 근본을 형성하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그의 작품 '새의 박물지' 를 숲속에 사는 모든 새들에게 헌정했다.

작곡가들은 백지 (白紙) 상태에서 음악적 영감을 떠올리지 않는다.

이들이 음악적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은 여행과 산책을 통해서다.

현대인들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새소리들을 담은 CD를 즐겨 찾는 이유는 모든 예술의 모태가 되는 자연의 품속을 더없이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