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다른 아이보다 적게 공부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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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아직도 더하기를 잘 못하면 어떡하니, 그렇게 손가락을 꼽아 가면서 언제 계산하려고 그래?" 아내가 아이에게 학습지를 가르치면서 못마땅한 듯 나무라고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공부하기 싫은데도 엄마의 닦달에 어쩔 수 없이 책상 앞에 앉는 일이 이젠 버릇처럼 됐다.

유치원에 다녀오면 미술학원에 가야 하고 저녁에는 엄마와 학습지를 공부하는 것이다.

때론 불만스런 표정으로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별 무리없이 따르는 것을 보면 신통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아이가 안쓰러운 마음에 그냥 아이들과 뛰놀게 하고 싶지만 아내는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를 적게 하는 편이라고요" 하면서 반박한다.

나는 이내 말문을 닫아버린다.

그 문제로 아내와 입씨름을 하면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참 안타까운 노릇이다.

개구쟁이 짓을 하면서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벌써 남들과 경쟁을 의식하면서 이 무더위 속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는 아이가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의가 과열됐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어 왔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느낌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한글을 깨우치는 것은 기본이다.

영어.한문까지도 어느정도 배운 다음 학교에 들어가는 상태고 보면 교육열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된다.

또 우리 아이도 그렇지만 유치원 때부터 최소한 한가지 이상의 과외를 시키는 일이 보편화된 듯하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거론되는 비싼 사교육비 문제가 피부로 느껴지면서 걱정이 앞선다.

한편으로 아이의 적성이나 취향에 관계없이 부모의 기대수준에만 도달하기 위해 속박되고 있다.

애들은 놀면서 배운다는 말이 무의미해진 듯하다.

벌써 한글을 깨우치고 영어노래를 부르는 아이가 대견스럽다는 생각보다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로 인해 자칫 아이의 순수한 동심이 멍들지나 않을까 무척 염려된다.

김일명〈울산시남구무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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