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차베스 종신집권 탄탄대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종신 집권을 향한 길이 열렸다.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이 15일 국민투표에서 54.4%의 찬성으로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차베스는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을 열었을 뿐 아니라, 남미에서 반미 좌파 세력을 대표하는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됐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16일 투표 결과가 발표된 뒤 수도 카라카스의 대통령궁 발코니에 나와 지지자들을 향해 “개헌안 통과로 진실과 위엄이 승리했다”며 “미래를 향한 문이 활짝 열렸다”고 말했다. 차기 대선에 대한 의지도 강하게 드러내 “2012년 대선에서 신과 국민이 다른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후보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차베스는 그동안 “베네수엘라 개혁을 완성하는 데는 6년의 임기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장기 집권을 위한 개헌을 시도해 왔다. 2007년 12월 대통령 연임 제한을 없애는 개헌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근소한 차로 부결됐다. 이번에는 연임 제한 철폐 대상에 대통령 외에 선출직 공직자까지 끼워 넣은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의 지지를 얻어낸 것이다.

◆“차베스에 권력 집중 심해질 것”=2007년의 개헌안 국민투표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치러진 15번의 선거 중 그에게 유일하게 패배를 안겼다. 하지만 집권 11년을 맞은 차베스는 자신이 펼쳐온 복지정책의 수혜자인 빈곤층과 서민층을 집중 공략해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 때문에 그의 주요 지지층인 빈곤층과 서민층이 이탈하지 않고 정국에 큰 이변이 없는 한 대권을 향한 그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추진해 온 사회주의 개혁에는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차베스는 2006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국유화를 신속하게 진행했다. 특히 그동안 활발하게 거론됐던 토지 재분배 개혁도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BBC는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대통령에게 더 많은 권력이 집중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야당의 사분오열도 차베스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장악력 유지할 수 있을까=개헌안 통과로 국민이 그를 재신임한 듯하지만 ‘차베스 피로 현상’도 감지되고 있다. 투표장에 온 한 사업가는 “차베스가 선거와 쇼로 유가 위기를 눈가림하려는 것”이라며 “우리는 같은 정부와, 같은 대통령, 같은 구호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말했다. NYT는 “차베스는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지만 2006년 대선에서 63%에 달했던 지지율과 비교하면 지지자는 줄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유가 하락도 차베스의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떨어지면서 긴축재정에 돌입하면 복지정책의 축소는 피할 수 없다. 남미 최고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는 경제 상황에서 식료품을 비롯한 각종 보조금도 줄여야 하고 세금 징수도 늘려야 한다. 지지층에 등을 돌리는 이러한 정책이 종신 집권을 향한 그의 노정에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하현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