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초당파 실험’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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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초당파적 국정운영 실험이 집권 초반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오바마가 직접 나서 많은 공을 들였지만 결정적 순간에 야당인 공화당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잇따라 실패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측근들은 허탈감을 드러내며 전략수정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오바마가 조속한 처리를 호소했던 경기부양 법안은 13일 밤(현지시간) 늦게 상·하원에서 통과돼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살펴보면 초당적 협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이날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상·하원 합의안에 대해 반대했다. 한 주 전의 하원 독자 법안 표결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상원에서도 공화당 의원 3명의 협조를 얻는 데 그쳤다. 백악관은 공화당의 의사진행 지연행위(필리버스터)를 막을 60석을 채우기 위해 모친상을 당한 민주당 의원을 ‘모셔올’ 비행기까지 주선해야 했다. 법안은 민주당 세로드 브라운(오하이오주) 의원이 의사당에 도착한 밤 10시40분이 넘어서야 통과됐다. <관계기사 e4면>

오바마 대통령은 법안 통과를 위해 직접 의사당을 방문해 공화당 의원들을 만났다. 이달 초엔 민주·공화 양당 상원의원 15명을 부부 동반으로 백악관에 초대해 수퍼보울 경기를 함께 관람했다. 12일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로 향할 때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 이 지역 공화당 초선의원 아론 쇼크(27)를 태웠다.

오바마는 “쇼크가 매우 능력있는 젊은이며, 주민을 위해 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쇼크는 24시간 뒤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오바마는 스프링필드에서 자신이 상무장관으로 지명했던 저드 그레그 공화당 상원의원이 장관직을 반납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레그가 “오바마 정부와 해결할 수 없는 정책적 갈등이 있었다”고 말한 데 대해 오바마는 “그레그가 (장관직에)먼저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던 것”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한 오바마의 참모진들은 국정 핵심 현안에 대한 공화당의 반대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전략수정에 나서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4일 보도했다.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는 “우리가 순진했다고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너무 희망적으로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참모진이 추진하는 새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공화당 대신 국민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다. 오바마의 최측근인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은 14일 “법안 통과 과정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이제부터 오바마는 최소 1주일에 한 번 지방 방문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워싱턴 정치문화에 대한 개혁열망이 매우 높은 상황을 십분 활용, 대국민 직접접촉을 통해 외곽에서 공화당을 압박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지난주 실업 문제 등 경제 상황이 심각한 인디애나·일리노이·플로리다주 도시를 방문했던 오바마는 이번 주엔 콜로라도·애리조나 등 서부 지역을 방문할 계획이다.

둘째, 의원 개개인에 대한 각개격파다. 공화당 전체를 대상으로 실속없는 구애에 나서기보다 지역별로 엇갈리는 이해에 기초해 일부 공화당 의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것. 오바마 참모진은 또 일부 공화당 주지사들이 당론과 달리 경기부양 법안 통과를 위해 의원들에게 압력을 넣은 사례처럼 주지사를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오바마가 초당적 국정운영 방침을 유지하느냐는 일단 상무·보건 장관 등 남은 고위직 인선에 공화당 인사 기용을 계속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 일선에서의 민주·공화 간 간극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28개 공화당 하원의원 지역구에서 ‘국정에 협조하지 않는 공화당’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라디오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이번 주부터 30개 민주당 하원의원 지역구에서 ‘불필요한 재정만 늘리는 민주당’이란 광고를 내보내며 맞대응할 계획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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