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눈]검찰 자존심 세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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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기수 (金起秀) 검찰총장의 임기만료를 한달여 남겨놓고 후임자문제로 검찰 주변이 여간 시끄럽지 않다.

마치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흉내낸듯 검사들은 차기 총장 경쟁인사를 4룡 (龍) 이니 5룡이니 하고 부르며 저마다 점치기 바쁜 요즈음이다.

전례로 보아 검찰총장은 임기만료 열흘이나 보름쯤 전에 후임자를 발표하면서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제 한달안에 인선이 매듭지어질 전망이니 당사자들이 조바심내는 것은 인지상정 (人之常情) 일 것이다.

그러나 조바심 정도를 넘어 점잖은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문제다.

정정당당한 능력겨루기가 아니라 상대방 흠집내기나 깎아내리기에 열중이라는 것이다.

특히 출신고교 선후배를 동원한 편싸움은 정말 꼴불견이다.

근거없는 루머와 비방이 저질 정치판 못지 않은데다 경쟁상대의 부인까지 들먹이는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있으니 여간 민망스럽지 않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한결같이 줄서기 경쟁을 벌인다는 부분이다.

누구는 여당의 실력자를 잡았고 누구는 청와대의 누가 밀고 있다는 설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다.

믿고 싶진 않지만 이야기가 상당히 치밀하고 설득력있게 짜여있어 믿지 않기도 어렵다.

전두환 (全斗煥) 정권 초기 개정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원판사에 대한 재임명 절차를 앞두고 있을 때의 일이다.

쿠데타 직후인지라 관가 (官街) 의 관심사는 온통 군부 (軍部) , 그중에서도 개혁주도세력의 동향에 집중되고 있었다.

싹쓸이 설 (說) 이 나돌면서 대법원 주변도 소문이 흉흉했고 몇몇 대법원판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말도 나돌기 시작했다.

대법원장 자리를 염두에 두고 개혁주도세력을 찾아다닌다는 것이었다.

권위의 상징인 대법원판사가 중령.대령들에게 줄을 대지 못해 안달하고 충성경쟁을 벌인 셈이니 웃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후 5공 (共) 시절 우리 사법부가 소위 정치권력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어떤 자세를 보였으며 국민들에게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검찰도 총장 임기제만 되면 검찰권은 저절로 독립되는 것처럼 떠들었지만 임기제 10년에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생각이다.

군사정권 아래서는 또 그렇다 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검찰의 입지 (立地)가 못해졌으면 못해졌지 나아졌다고 하기는 힘들다.

검찰총장만 봐도 임기와 관계없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 집권 1년도 채 안돼 두명이나 도중하차했었다.

또 검찰총장이 퇴임과 동시에 여당 지구당 조직책을 맡는 바람에 여야합의로 '퇴직후 공직제한' 이란 위헌 법률까지 만들게 했고 또 최근에는 한보.김현철 수사과정에서 수사팀이 도중에 바뀌는 전례없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가.

검찰총장은 바로 공권력의 상징이자 검찰의 얼굴이다.

시끌벅적하게 '운동' 을 해서 차지할 수 있는 벼슬이 아니다.

그런 자리에 무슨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일단 차지하고 봐야 한다는 인사가 임명된다면 큰 일이다.

적어도 검찰총장이라면 개인의 영달 (榮達) 보다는 조직을 먼저 생각하는 정도의 양식은 지녀야 하고 지금의 검찰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는 스스로 파악할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중 누가 된다 해도 크게 탓하기 어려울 만큼 나름대로 명분이나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검찰총장이 서로 삿대질하는 분위기 속에서 뽑힌다면 개인이나 조직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 틀림없다.

사회정의 실현의 상징적 자리에 개인 정의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을 앉힌다는 것은 난센스가 아닌가.

벌써 검찰 주위에는 "새 검찰총장은 다음 정권 들어설 때까지의 6개월 총장이 될지도 모른다" 는 단명설이 나돌고 있다.

이같은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남은 한달동안 당사자들이 겸손한 자세로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는 몸가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권 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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