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질 따질만큼 여유로운 상황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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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오전 4시30분에 나서면서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합니다. 그런데도 일 구하기가 너무 힘듭니다.”(일용직 근로자)

“오늘 하루 힘들어도 용기를 잃지 말고 견딥시다. 정부도 일자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신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左)이 11일 새벽 경기도 성남시의 한 인력 업체를 찾았다. 윤 장관이 일용직 근로자들로부터 의견을 듣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루 벌어 하루 살기에도 힘겨운 일용직 근로자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호소했고, 장관은 당장 해결책이 없어 안타까워했다. 11일 취임 이틀째인 윤증현 장관이 성남 인력시장을 찾았다. 우려했던 대로 고용시장은 얼어붙어 있었다.

윤 장관은 하루 일감을 찾으러 몰려든 이들에게 “참으로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김두일 두리인력건설 사장은 “하루 150명이 와서 60명 정도가 일자리를 얻어 간다”고 말했다.

구직자들의 사정은 절박했다. 주방 일을 30년째 해 온 김모씨는 “요새 문 닫는 식당이 많아 일자리가 없다”며 “1년째 (주방)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공사 현장 잡일 등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한다고 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젓한 직장인이었던 이도 여럿 있었다. 수출 중소기업에 다니다 일자리를 잃고 인력시장에 출근하는 한 구직자는 “2~3일에 한 번 일을 얻어 나간다”고 말했다.

구직자 중엔 ‘전직 사장님’도 있었다. 주모(47)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다 장사가 안 돼 문을 닫고는 일용직 인부로 변신했다. 가족을 지방으로 내려 보낸 뒤 하루 일당으로 7만~8만원을 벌어 2~3일을 버티는 그는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경제를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다. 주씨는 “(구직자들이) 모두 같은 형편인데 사람들이 일이 없어 돌아가는 걸 보면 눈물이 나고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며 “보이는 게 있어야 발을 내디딜 텐데 앞이 너무 캄캄하다”고 울먹였다. 일자리가 없는 현실이 주는 절망감이었다. 윤 장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윤 장관은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고 말문을 연 뒤 “전 세계가 다 어려워 더 어렵다고 느껴진다. 정부가 열심히 노력할 테니 하반기엔 경제가 좋아질 것이란 희망을 갖자”고 위로했다. 이어 “추경예산을 하루빨리 편성해 일자리가 없는 사람, 소득이 없는 사람을 도울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윤 장관의 표정은 무겁고 어두웠다. 전날 취임 일성으로 일자리 창출과 민생 지원을 내세웠지만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갈 곳이 없는 청년 실업자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 실업자를 생각할 때 지금은 일자리의 질을 따질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급속도로 줄고 있는 고용대란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통계청은 이날 1월 일자리가 10만3000개 줄었고 청년층(15~29세) 12명 중 한 명이 공식 실업자라는 고용 동향을 발표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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