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이재주 '곰사냥' 만루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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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해 시즌 중 만난 기아 이재주(31)의 가방에는 포수 미트가 없었다. "처음에 들고다니다 이젠 1루수 장갑만 넣어 다녀요." 약간은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강릉고를 졸업하고 1992년 태평양(현대의 전신)에 입단한 후 10여년을 무명으로 보냈던 그에게 더 이상 포수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현대 시절에는 박경완(현 SK)이, 기아로 옮겨와서도 김상훈이라는 주전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이재주는 지난해 1루수나 지명타자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이재주의 얼굴은 또다시 흙빛이 됐다. 거물 자유계약선수(FA) 마해영이 옮겨와 이재주가 노리던 오른손 거포라는 틈새를 메웠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대타로 돌아갔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으나 행운은 수줍은 신부처럼 슬며시 그의 소매 자락을 잡아당겼다. 마해영과 심재학이 최근 모두 부진하면서 기회가 왔다. 지명타자로 주전 4번 타자 자리였다.

그리고 11일 광주 두산전에서 시원한 장외 만루포를 날려 버렸다. 프로 데뷔 후 첫 만루포였다.

이재주는 3-0으로 앞서던 7회말 2사 만루에서 두산 투수 이재우의 143㎞짜리 가운데 높은 직구를 받아쳐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135m짜리 대형 홈런을 터뜨렸다. 이전까지 대타로 나서 올 시즌 홈런 2개만 기록했던 '백업맨'이재주에서 '주포'이재주로 우뚝 서는 축포였다. 기아는 8-0으로 승리, 4연패 뒤 2연승을 달렸다.

현대 브룸바는 수원 삼성전에서 0-2로 뒤지던 3회말 삼성 선발 호지스에게서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동점 2점 홈런을 날렸다. 시즌 22호로 2위 박경완(SK.18개)과의 격차를 4개차로 늘렸다.

SK와 롯데는 연장 12회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으나 2-2 동점으로 끝났다. 롯데는 1-1이던 연장 12회 초 '똑딱이 타자'정수근이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115m짜리 솔로홈런을 터뜨려 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12회말 2사3루에서 채종범의 평범한 땅볼을 유격수 김태균이 잡지 못해 동점을 허용했다. 채종범의 타구는 안타로 기록됐다.

이날 LG와 한화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에는 1만4702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이로써 LG는 전신인 MBC 시절을 포함해 국내 스포츠 사상 최초로 홈 관중 1500만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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