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이 보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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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영학, 소, 27×21㎝. [갤러리현대 제공]

조각가 이영학(60)씨의 서울 수유동 집은 고물상이다. 아니 보물창고다. 1층 생활공간을 빼고는 2층 작업실, 마당 곳곳에 고물을 쟁여놓았다. 지하실은 이 고물을 용접하는 대장간이다. 여기서 그는 버려진 호미·연탄집게·낫·대못 따위를 쪼개고 붙여 새로, 호랑이로, 부활시킨다. 그는 농부의 손에서 땅을 일궈 먹을 것을 만들던 농기구들로 이미 수백 마리의 새를 만들어 전시장에서 날려준 작가다.

이영학씨는 서울대 조소과 재학 시절, 가난한 형편에 용접 동판 살 돈이 없어 고철을 구해다 수업을 들으면서부터 고물과 인연을 맺었다.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와서는 ‘걸레스님’ 중광(1935~2002)과 의기투합해 아예 전국 산천을 떠돌아다녔다. 중광 스님은 그의 폐품 작업을 ‘무공해 예술’이라 불렀다.

이번에 이씨가 내놓는 것은 엿가위로 만든 소와 송아지 50여 마리다. 소띠해, 상황에 굴하지 말고 소처럼 느리더라도 굳건히 땅을 디디는 뒷심을 기르라고 웅변한다. 서울 사간동 두가헌갤러리 2개층 전시장 벽에 소로 변신한 엿가위를 가득 걸었다. 전국 각지의 넝마주이들은 이 가위를 덜그럭거리며 온 동네 고물을 거둬다가 처자를 먹여살렸다. 이들로부터 받은 엿가위가 150여개, 18년 전부터 소머리로 만들기 시작했다. 전시로 발표하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만큼 실한 ‘물건’을 더는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처럼 기성품에 최소한의 손질을 했다. 크기도 제각각이고 녹슬고 낡은 정도도 다 다르다. 가위 두 쪽을 이어 붙이니 손잡이는 귀, 구멍은 둥그런 눈이다.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니 사람도 물건도 퇴물이 될까 두렵다.

그러나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퇴물과 보물은 종이 한 장 차이다. 22일까지. 02-3210-2111.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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