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신데렐라' 이후 여기저기서 신드롬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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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드라마 '모래시계'와 '애인'이후 다시 신드롬이란 단어가 유행이다. TV드라마 '신데렐라'가 발원지다. 탤런트 황신혜와 이승연이 한 남자(김승우)를 놓고 벌이는 자매간의 대결.두사람 가운데 '왕자님'을 차지하는 막판 주인공이 누구냐를 점치도록 만드는 게 드라마 인기의 비결이자 극을 끌어나가는 힘이다.

그 증후군의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PC통신 토론방도 이승연팬과 황신혜팬으로 갈렸다.“(김승우를)승연이 언니와 맺어 주세요”“'악녀'황신혜는 현대적 여성상의 상징이다”는등 드라마밖 '장외전쟁'도 한껏 뜨겁다.'신데렐라 신드롬'의 전개양상이다.

때맞춰 잠잠하던 연극무대도 일어섰다. 동화'신데렐라'를 새롭게 조명한 '동화본색'(8월3일까지,바탕골소극장)이 공연중이다.제목을'본색(本色)'으로 한 것은 동화'신데렐라'의 본디 성질을 따져보자는 뜻. TV드라마'신데렐라'와 연극 '동화본색'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과 내용에서 판이하다.그러나 그 틀거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 '신데렐라'다.신데렐라는 유럽 옛 동화중의 여자주인공이다.계모와 그의 딸들에게 박대받던 소녀가 친어머니 영혼의 도움을 받아,유리구두가 인연이 돼 어느 왕자와 결혼하게 된다는 얘기. TV드라마는 동화중에서'왕자:신데렐라'의 관계만을 지극히 현대적으로 극대화시킨 경우다.반면 연극'동화본색'은 우리가 아는 신데렐라답지 않게 너무 불행하다.그녀에겐 동화같은 우연성의 행운이 없다.계모와 그의 딸들에게 유리구두를 신을 기회조차 박탈당하며 나중엔 계모까지 살해 한다.연극에서 신데렐라는'없다'. 좀 더 동화 이야기를 해보자.미국작가 찰스 패너티는'배꼽티를 입은 문화'에서“동화의 테마는 본래 끔찍하고 잔인하다”고 했다.'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는 공주가 강간을 당하고,'빨간 모자'에서는 늑대가 할머니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나서 소화를 할 틈도 없이 빨간모자에게 덤벼들어서 손발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동화'신데렐라'의 원전도 마찬가지.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신데렐라'이야기는 17세기 샤를르 페로의 개작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1천년전부터 구전되어 오던 7백여가지의 이설(異說)중 스코틀랜드판 이야기는 이렇다. 왕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두 한쪽과 발(연극'동화본색'에서는 2백19㎜로 정했다)이 맞는 여성이 나타나면 결혼하겠다고 알린다. 이때'라신 코티'(신데렐라)의 계모는 첫째딸의 발끝을 잘라내고 그래도 맞지 않자 뒤꿈치까지 잘라내는 잔혹성을 드러낸다.

이같은 무시무시한 원전과 달리 페로'덕'에 우리는 신데렐라를 통해 순종적이며 착한,남성의존형 여성의 전형을 만난다.성(性)을 불문하고 이런 여성상에 대한 동조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래의 이같은 신데렐라형 여성의 이미지는 17.8세기 서구 산업사회의 등장과 함께 형성됐다는 점.사회학자들은 이때부터 모든 경제활동이 남성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여성의 남성의존성이 더욱 심화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풀이한다.

그럼 여권이 신장됐다고 하는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신레렐라는 죽었는가 살았는가.이에 대해 김정일(김정일 정신과의원 원장)씨는 “그래도 신데렐라는 있다”고 말한다.돈(권력)과 행복이 비례한다고 믿던 옛날에 비해 그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젊은이들에게 신데렐라는 여전히 유효한 담론이란 얘기다.

때로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동화적 모티브를 대중적 상업주의로 포장시켜 어른들의 환심을 사는 TV드라마'신데렐라'.과연 이 드라마가 오늘날 신데렐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현실과 맞는 현대판 여성상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정재왈 기자

<사진설명>

동화'신데렐라'를 소재로 한 TV드라마와 연극이 인기다.아름답고 착한 여성의 대명사로 인식돼온 신데렐라.시대가 변한만큼 이제 그를 이해하는 잣대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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