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性궁금증 학교에선 못풀어 -한학기 한두차례 강연이 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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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고1때 사귄 남자아이가 있었다.그 아이는 나에게 뽀뽀해달라고 졸랐다.자꾸 거절하니까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린 헤어졌다.그후 다른 남자를 사귀었다.그 아이도 뽀뽀하자고 했다.그래서 난 뽀뽀가 마약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YWCA 서울 강남청소년회관과 강남교육청이 지난 19일 서울 국악중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교육시간에 초빙강사인 김성애(金聖愛) 중앙여고 양호교사가 학생들에게 들려준 한 여학생의 체험담이다.

金교사는“성적 접촉은 한번 시작되면 계속 빠져드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예”라며“성문제에 대한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이 학교 K모(15)양은“다른 사람들의 사례들을 통해 나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초.중.고교는 10여년전부터 체육시간에 성교육을 단편적으로 실시하는데 그치고 있다.

최근들어 여자 중.고생들이 등하교 길에 출산하는등 청소년의 성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교육부는 성관련 장학자료를 배포,의무적으로 가정.도덕.체육 교과시간에 연간 10시간 정도'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도록 각 학교에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학교는 양호교사나 생리대회사의 강사등을 초빙해 연간 1~2회 강연하는등 단발적이거나 형식적인 교육에 그치고 있다.

그 내용도 남녀간 생물학적 차이 비교에 그치고 있다고 학생들은 전한다.

지난해 9월 여성민우회의 가족과 성상담소가 서울시내 남녀 중.고생 1천1백58명과 서울시내 52개교 교사 52명을 대상으로 성교육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교사 98%가 불충분한 교재와 성교육을 담당할 만한 전문성 부족등으로 학교에서 성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의 성교육에 대한 요구는 매우 컸다.응답 학생의 79.9%가 학교 성교육이'불만족스럽다'고 대답했고 단지 8%만이 '만족스럽다'고 밝혔다.만족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뻔한 이야기'라고 답한 경우가 45.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성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27.4%),정말로 궁금한 것은 가르쳐주지 않는다(12.2%),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다(11.7%)고 말했다.

이같은 학교에서의 성교육 실태에 대해 YMCA 청소년성상담실 이명화(李明花)실장은“청소년들은 친구나 선.후배,대중매체등을 통해 수없이 왜곡된 성문화에 접한다”며“성교과서가 다루는 내용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실을 알고 있는 청소년들을 지도할 새로운 성교육 방법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李실장은“상담 학생들이'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좋을 때 어느 선까지 가야 하나','비디오를 보고 흥분돼 성폭력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며“학생들은 이러한 성문제를 해결하는데 아주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金교사도“학생들의 생활과 분리된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며“아주 구체적인 성교육이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학교에서 성교육을 내실있게 실시하려면“전문성과 자질있는 교사 확보와 자료 마련을 위한 재정적 투자가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집단 토론.사례 분석.자기체험 발표등 다양한 교육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양원 교육전문기자

<사진설명>

유해한 성 문화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기 쉬운 청소년들에게 충실한 성교육이 절실하다.성교육 시간에 소그룹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국악중학교 3학년 학생들.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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