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절 문앞까지 닥친 개발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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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십여년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먹물 옷을 입은 우리 스님들은 산자수명(山紫水明)을 누리는'산수부르주아'는 아닌가”라고.머물던 사찰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일어난 망상이었는데,각고정진하는 도반들에겐 미안한 일이 되었다.그런데 이젠 그런 망상도 하기 어렵게 되었다.절마다 문앞까지 들이닥치는 천박한 개발붐 때문이다.

산문(山門)밖을 나설 때 멀리까지 시야를 청정하게 해주던 하얀구름 조용히 드리운 아름다운 능선들,만행(萬行)길에서 돌아오는 지친 발걸음에 반가이 걸망을 들어다주던 더벅머리 총각을 만나기 어렵다.천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상생(相生)의 터를 잃고 경주박물관이나 경복궁 뜰로 옮겨진 초라한 불상과 탑들을 보면서 느낀 일이다.

요즘 설치미술,퍼포먼스 등 예술현장을 보면 더욱 서글퍼진다.그 옛날 우리 민족은 참으로 지혜로운 문화인이었다.탑이 설 장소로부터 보이는 전 시야를 설치현장으로 인식했다.동쪽의 산 정상에 서서 탑을 바라다보아도,다시 저 아래 시냇가에서 탑을 올려다보아도 바라보는 그 자리가 항상 중심이 되기에 어느 곳에서나 안심과 해탈을 느끼게 한 것이다.

'동쪽이 주인이 되려하면 서쪽이 주변이 되어주고,다시 서쪽이 주인이 되려하면 바로 동쪽이 자리를 내어준다.'주반중중(主伴重重)을 설명한 화엄경의 경문이다.안심(安心)은 상생(相生)으로 통하고 상생은 조화로운 장엄(莊嚴)으로 나타난다.유럽의 어느 나라는 항공로를 정할 때 수도원 위의 하늘을 피한다고 한다.소음마저 안된다는 배려에서다.문화의 저 깊은 곳,민중의 마음을 진정시켜 호흡이 고르고 깊어지면 안목은 벽을 허물고 천리를 본다.일연스님이 지은'삼국유사'를 보면 개구장이 동자가,임신한 여인이 산중의 수도승을 제도한다.성속(聖俗)이 자유롭게 교차하며 해탈하는 숨깊은 문화현장이 그립다.그러기 위해선 숲이 깊고 숨이 깊은 안심의 원천인 사원의 정적을 지켜야 한다.다시 장엄한 우리 문화 천년을 위해. 〈현원 스님 가산불교문화연구원 기획연구실장〉

<사진설명>

현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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