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체인질링’ 속 오스카 시상 감독 의도일까, 우연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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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핏빛 립스틱을 칠한 크리스틴 콜린스(앤절리나 졸리)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1935년 아카데미상 시상식 실황에 귀를 기울일 때, 그 순간만큼은 달리 보였다. 아이를 잃고 애타는 어머니 콜린스가 아니라 오스카상 수상 여부에 마음 졸이는 여배우 앤절리나 졸리가 보였단 소리다. 대부분이 찜한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 자신이 점친 ‘어느날 밤에 생긴 일’이 작품상을 탔을 때, 그녀는 펄쩍펄쩍 뛰었다. 다음 달 22일(현지시간) 열리는 제8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이 작품 ‘체인질링’(사진)으로 첫 여우주연상을 타게 되면, 혹시 저렇게 화색이 돌까.

이 우연이 불편했는지 뉴욕 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스콧(A.O.Scott)도 필봉을 휘둘렀다. 지난해 미국 개봉 직후 영화평에서 “영화팬과 오스카상 심사위원들에게 윙크하는 걸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졸리의 불안과 공포, 슬픔과 분노를 잦은 클로즈업으로 강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게 “오스카상에 값한다”면서도, “칭찬으로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체인질링’ 팬 사이에선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물론 이스트우드 감독이 또다시 오스카상을 탐냈다고 한들, 이 장면과 직접 연결시킬 근거야 없다. 영화의 배경이 할리우드의 황금기였던 1930년대 LA란 걸 상기하면 별 난데없지도 않은 에피소드다. 다만 ‘오스카상을 노린(Oscar bait)’이란 관용구가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는 요즘, 노장의 사려가 더 빛났으면 어땠을까.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 법이듯 말이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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