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부가 전달한 한·일회담 문서 곳곳에 먹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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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그들이 숨기고 있는 과거 때문에 자신의 미래 세대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한·일회담과 식민지 책임, 독도 영유권 등에 대해 사실 자체를 감추고 있습니다.”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명시한 1951년 일본의 법령을 찾아낸 재일동포 이양수(58·사진) 씨가 한국을 찾았다. <본지 1월 5일자 21면>

이씨는 일제 강점 하 태평양 전쟁 피해자 등으로 이뤄진 ‘일·한 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의 사무차장을 맡고 있다. 일본 정부가 마지못해 일부 공개한 한·일 회담 문서 6만 쪽을 검토하던 중 독도 영유권에 대한 법령을 찾아냈다. 그는 “식민지 통치에 대해 사과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일제 하 피해자들의 싸움이 독도를 지킨 셈”이라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이씨는 21일 재단에서 한·일회담 문서 공개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했다. 이씨가 속한 단체는 2006년 일본 정부에 대해 일·한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청구했다. 몇 차례의 소송 끝에 일본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마지못해 6만 쪽의 관련 문서를 공개했다.

“일본 정부는 문서 곳곳에 먹칠을 해서 주요 사항을 숨겼습니다. 총 문서의 25%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문서 작성일조차 누락했습니다. 일부러 알아볼 수 없게 뒤죽박죽인 문서 더미를 던져 놓았던 것입니다.”

이씨는 다음달 일본 정부에 문서 추가 공개 소송을 낼 예정이다. 먹칠이 된 문서의 상당 부분은 독도 문제와 같이 일본 정부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50~60년대의 한·일 회담에서 일본은 식민지 침략을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식민지 피해 보상은 고사하고 되레 일본이 한국에 남겨두고 온 재산을 반환하라는 전략을 썼다. 1951년 10월 이승만 정부와 첫 예비회담 직후, 일본 정부는 회담의 기본 방침을 극비 문서로 남겼다. 이씨는 “이 문서에는 ‘한반도에 남은 일본 측의 재산 규모가 엄청난 점에 비추어 한국 측의 대일 청구는 원칙적으로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는 지침이 있다”라고 소개했다. 이 문장의 앞뒤로는 또 먹칠이 돼 있었다.

“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은 많은 문제를 미해결로 남겨 놓았습니다. 강제 징집된 군인·군속, 종군 위안부 등에 대한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식민지 피해 당사자들을 외면한 채 한·일 정부 사이에 정치적 타협으로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지금도 한국과 일본 곳곳에서 일제 식민지 피해자들의 전후 보상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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