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신3저’… 위기가 기회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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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1980년대 중반 한국 경제는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3저(低) 현상 덕이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09년 현재 새로운 3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그렇다. 즉 물가와 금리, 원화 가치가 모두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증권가 일각에서는 ‘신3저’라는 용어가 등장했으며 우리 경제가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삼성증권은 21일 ‘위기는 기회다. 신3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역발상의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변화의 단초를 신3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유가 급락이 공통점이다. 80년대 초 2차 오일쇼크로 급등했던 국제 유가는 80년대 중반 이후 급락했다. 서부텍사스유(WTI)는 80년대 초반 고점(배럴당 39.5달러)에서 11달러대로 하락했다. 지난해 7월 장중 한때 147달러까지 올랐던 WTI는 20일 현재 38달러로 낮아졌다. <표 참조>


원화 가치도 급락했다. 80년대 당시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는 절반 수준 이상으로 떨어졌고 엔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중반 이후에도 원화 가치는 달러와 엔화에 대해 모두 큰 폭으로 떨어졌다. 특히 엔화에 대해선 고점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금리도 마찬가지다. 80년대 당시 국고채 금리는 20%대에서 10%대로 내려왔고 2009년 현재 국고채 금리는 6%대에서 3%대로 낮아졌다. 다만 80년대와 달리 요즘 회사채 금리 하락 폭은 미미하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금리 인하, 유동성 공급 확대,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사용하고 있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투자가 극히 부진하다는 게 예전과 확실히 다른 점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덕에 80년대 초 우리 경제는 설비 과잉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80년대 중반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되자 급증하는 세계 수요에 맞춰 공급을 신속하게 늘릴 수 있었다. 이 덕에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했다. 지금은 이와 반대다. 외환위기 이후 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잠재성장률도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이런 공통점과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국내 투자 부진 문제가 해소되면서 원화 가치가 지금처럼 낮게 유지된다면 ‘신3저’는 우리 경제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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