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회가 국정 중심에 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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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늘은 17대 국회가 개원식을 갖는 날이다. 새로 국민 대표기관이 구성됐지만 마음이 밝지 않다. 활기차던 국민 생활이 맥빠진 채 추락을 계속하고, 잘 나가던 나라가 시대착오적 논쟁으로 멍들고 부서지고 있어 더 그렇다. 국민의 역량을 모으고 주변 여건을 잘 살려 나라를 멋있게 경영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국회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성공하는 국회'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간 우리 현대사에서 국회는 실패의 연속을 반복해왔다. 한국에서 '국회의 실패'란 그 중차대한 역할과 권한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표성을 살리지 못한 것과 능력 부족으로 자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국회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싸움장으로 전락해 버렸고, 특히 제왕적 대통령에 예속되어 권력통제도 나라 살림살이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국회는 다시 차기 대통령선거를 향해 돌진하는 싸움터로 변했다. 이런 국회를 국민이 외면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 결과는'너희들은 나와라, 우리가 직접 하겠다'는 수준에까지 와버렸다. 17대 국회가 직면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상황이다.

17대 국회가 성공하는 국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국회의 위상과 좌표를 바로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는 국회가 국민 대표기관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확실하게 잡는 일이다. 특정한 계층.지역.정파.이익단체.기업.노조.국회의원 개인 등의 특수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익과 의사들을 조정하고 수렴하여 국민 모두 잘살고 상생하는 일반 의사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헌법도 정하고 있는 바이고 민주정치에 있어 불변의 원론적 내용이지만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자기 이해관계를 떠나 국회와 자신의 좌표를 정확히 인식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로 의정활동에 임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국민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질과 실력과 지식과 덕목이 요구된다.

국회가 국민 대표기관으로서 입법기관. 권력 통제기관.예산 의결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구.정파.대통령과 행정부 등의 압력과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해 자율성을 확보하고 진정한 국정의 중심으로서 공동체의 존속과 국민 모두의 복리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특히 종래까지 있었던 권위주의 대통령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국회는 대통령의 일방적 영향력을 차단시켜 대통령에의 예속에서 탈피하고 잃어버린 자기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 이제는 여야 의원 할 것 없이 자유투표로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실현해야 하고, 공개투표로 자기 이름을 내걸고 정정당당하게 의정활동에 임해야 한다.

국회가 국민 대표기관으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권력투쟁에서 정책중심으로 기능을 회복하여야 하고, 의원 개개인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식견과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국회의원은 더 이상 출세하는 자리도 아니고, 한을 푸는 자리도 아니며, 금배지를 달고 거들먹거리는 자리도 아니다. 따라서 성공하는 국회를 달성하기 위해 국회의원은 이제 부지런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국민의 지적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당장에 국민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국회는 중심을 잃고 각종 사회세력들에 의해 휘둘리게 된다. 17대 국회는 새롭게 물갈이된 점이 있는 반면 경험과 지식에서 우려되는 점도 많고, 다른 한편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이해관계인들의 요구와 직접행동이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달을 위험도 있기 때문에 국민 대표성을 회복하고 공고히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민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되 국민 대표성과 자율성을 공고히 하는 것, 여기에 성공하는 국회로 가는 왕도가 있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