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금융개혁위원회,금융개혁 '할것인가.말것인가' 시험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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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바로잡기 어려운 부당함을 바로잡고 이를 수 없는 별에 이르고자 무모하리만큼 우직하게 도전하는 '돈키호테'.그는 비현실적 인물이지만 우리에게 꿈을 심어 준다.정권말기,그것도 주무부서의 냉소속에 발족한지 불과 넉달만에 크고 작은 고질적 과제를 다루며 쾌도난마의 개편방안을 제시하는 금융개혁위원회는'라만차'기사의 후예답다.

더구나 이해관련 집단들의 끈덕진 외압공세를 견뎌낼 만한 변변한 갑옷도 없이 노출된 위원들이 때로는 대리전쟁을 치르기도 했다.항상 지루하게 마련인 토론은 열기를 띠는 대목도 있었으나 의견의 대세 흐름을 존중해 단 한차례의 표결도 필요없이 매듭지어지곤 했다.

그러나 금개위는 돈키호테보다는 '햄릿'을 닮은데가 더 많다.그것은 금융개혁이란 수미일관한 논리추구이기보다 이것저것 챙겨보아야 할 현실적 제약조건이 많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제약조건을 무시할수록 논리적 일관성은 돋보이지만 실행가능성이 뒤떨어지고, 반면 그것을 의식할수록 논리와 개혁의지는 왜곡,퇴색된다.

정부의 금융개혁 목표인식이 투철하지 못하다.햄릿의 유명한 독백처럼 금융개혁을'할 것인가,말 것인가'.특히 재경원과 중앙은행에 관련한 문제에 대해 중립적 입장에서 금개위 작업에 무게중심을 잡아줘야할 정부기구가 실종된 느낌이다.

발족초기에 자금을 당장'싸게,많이,담보없이'쓸수 있게 하는 것이 금융개혁목표라고 보는 기업계 시각을 부각시킨 것도 정부 일각이었고,금개위 건의안을 대체로 시큰둥하게 보거나 때로는 헌법까지 거론해 트집잡는 것도 또 다른 정부 일각이었다.

기관간 이해대립이 첨예한 안건을 다룬 회의에 위원별 출결사항, 찬반발언 내용을 점검하고 토의내용 녹취테이프에도 관심을 보이는 모양이다.응분의 무엇을 베풀겠다는 말인가. 도대체 대한민국에 몇개의 정부가 존재하는가.진정으로 금융개혁을'할 것인가,말것인가'.정부의 의지와 능력이 시험받는 국면에 들어섰다.

햄릿의 독백은 죽음과 삶을 저울질하며 인생의 고뇌를 말하는 가운데'법의 지체,관료의 건방진 언행'을 언급한다.이 구절은 셰익스피어의 실수다.햄릿은 왕자의 신분이므로 법과 관료로부터 수모를 당할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저자의 경험을 작중인물의 입을 빌려 토로한 것이다.

그러나 제도와 관료조직으로부터 부당한 조치와 대접이 엄연히 지배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드라마 아닌 실제 상황이다.특히 금융산업이 그 대표적인 피해부문이었고,낙후된 금융부문이 국민경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금융개혁은 관치금융의 잔재를 청소하는 작업이다,청소작업부는 먼지.검뎅이를 덮어 쓸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잡다한 인원구성의 금개위도 때론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청소작업에 동참해야 할 정부관료.국회의원들의 각오가 의문시되고 있다.

여기서 관료란 재경원뿐만 아니라 한국은행의 관료도 포함된다.입행시에는 우수한 인력이 변질해 집단이기주의에 충실하고 일반 은행위에 군림함을 즐기는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중앙은행 독립이 집행부의 성숙된 의식에 기초해야 한다.

가장 우수한 관료의 집결체가 재경원 금정실이지만 그 발전적 기능조정과 기구축소없이는 금융개혁은 공염불이다.금융산업발전에 이바지할 각오로 낡은 틀을 벗어던지자.햄릿이기보다는 돈키호테를 닮기로 하자.

<김병주 서강대 경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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