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다닥! 핀이 쓰러지면 귀도 가슴도 뻥 뚫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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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입 프로볼러 교육이 열린 이천의 볼링장에서 김성환 선수가 볼을 리프팅하고 있다. [한국프로볼링협회 제공]

 15파운드(약 6.8㎏) 무게의 볼링 공에 꿈을 실어 던지는 청각장애 프로볼러가 있다.

바로 김성환(38)씨다.

김씨는 8일 한국프로볼링협회(KPBA)가 발표한 27명의 프로테스트 최종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앞서 지난달엔 95명이 출전한 실기 테스트에서 60게임 평균 213.73점을 기록해 14위로 최종전에 진출했다. 1995년 시작된 프로볼러 테스트에서 장애인이 합격하기는 김씨가 처음이다.

김씨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출전한 2005년 호주 멜버른 데프림픽(농아인 올림픽) 볼링 5인조 단체전에선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13일 수화 통역사를 동반하고 그와 인터뷰를 했다.

김씨는 11세 때 갑자기 열병을 앓으며 청각을 상실했다고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치료 시기를 놓쳤고, 병세가 악화돼 말하는 기능마저 잃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가계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어머니(73)가 가구공장에 나가 일했지만 3남매를 뒷바라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과정인 선희학교(현 국립서울농학교, 서울 종로구 신교동)만 마친 뒤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딸랑 중학교 졸업장 한 장을 쥐어 든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가구 공장 허드렛일과 건축 현장을 전전하며 10대 후반과 20대를 보냈다.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29세 때인 2000년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서울 금천구 농아인협회 지부장을 지내고 있는 친누나 태순(44)씨의 권유로 볼링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핀이 따다닥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습니다.”

볼링의 매력에 푹 빠져 있던 그는 2006년 일산에서 볼링숍을 운영하는 정종호(51) 코치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미 14명의 프로볼러를 키워낸 정 코치였다. 정 코치는 그의 볼링에 대한 열정과 어려운 형편 등을 고려해 무료 레슨을 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김씨의 균형감각이 문제였다. 정 코치는 “청각 장애인의 경우 일반인들에 비해 균형감각이 크게 떨어진다. 성환이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난청 환자들은 듣기를 담당하는 달팽이관은 물론 몸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평형기관도 함께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 코치는 2년 동안 하루에 2~4시간씩 그의 양 어깨에 평행봉을 걸치고 똑바로 걷는 연습을 시켰다. 좌우 균형감을 찾아주려는 노력이었다.

균형감각이 돌아오자 기량도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2008년 초다. 하지만 불규칙적으로 건축 현장에서 받는 한 달 150만원 안팎의 수입으로는 볼링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이때 그를 잡아준 사람이 부인(37)이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에서 2000년 결혼한 부인은 “포기는 안 된다.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정 코치는 “성환이는 집중력이 매우 뛰어나다. 아직 다른 프로들과는 기량 차이가 있지만 레인 파악 능력, 경험 등만 보강하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씨에겐 소망이 있다. “전국에 500명 정도의 청각 장애 볼링선수가 있다. 이들에게 통역 없이 제가 직접 제대로 된 레슨을 해주고 싶습니다.”

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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