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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문제는 자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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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직에는 위계(位階)가 있고, 위계가 있는 한 위로 올라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실적과 능력, 경륜이 있어 승진하는 거야 누가 뭐랄까마는 깜냥이 안 되는 사람까지 승진 대열에 끼려고 무리수를 두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9급 공무원에서 출발해 고위 공무원인 3급까지 승진하려면 평균 33.6년이 걸린다고 한다. 정부 조직처럼 위계 구조가 층층시하(層層侍下) 같고, 인사 적체가 심한 곳일수록 인사철만 되면 뒷말이 무성하게 마련이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였던 로런스 피터 박사는 수백 가지 조직 사례를 분석해 ‘피터의 원리’라는 것을 창안해 냈다. 40년 전이다. 위계 조직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무능력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승진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피터의 원리’ 제1조다. 조직이야 망하든 말든 스스로 무능력을 드러내 더 이상 승진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너도나도 계속 승진하려고 용을 쓴다는 것이다.

실력으로 승진하든, 줄을 잡아 승진하든 높은 자리에 올라가 일만 잘한다면 조직으로서야 큰 문제될 게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유능하다는 평판이 자자하던 사람이 부하들을 거느리는 높은 자리로 승진하고 나더니 갑자기 무능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평교사에서 주임교사를 거쳐 교감이 될 때까지는 유능했는데 교장으로 승진하면서 일을 제대로 못해 주저앉는가 하면, 뛰어난 기술자가 공장장으로 발탁된 뒤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위계의 단계마다 요구되는 자질과 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리가 달라지면 그릇도 달라져야 한다. 데스크가 평기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기자가 할 일을 대신해서는 결코 편집국장이 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가 될 때까지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렸다. CEO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기에 서울시장이 됐고, 서울시장으로서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대통령까지 됐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국가 최고지도자의 위치까지 오른 그에게 남은 일은 그 자리에서 성공하는 것뿐이다.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이다. 왼쪽으로 집권했든 오른쪽으로 집권했든 일단 최고지도자가 되고 나면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현재까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왼쪽으로 집권했지만 무게 중심을 오른쪽으로 옮겨 중도에 맞췄기 때문이다. 주요 각료 인선과 공약 이행의 우선순위 조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좌파 진영이 서운해할 정도다. 대통령 역할 똑소리 나게 한다는 평을 듣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우파의 지지로 당선됐지만 좌파 인사들을 기용하고, 좌파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하는 등 그 역시 중도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닷새 후면 퇴임하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성공하지 못한 것도 클릭 조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통합자(uniter)’가 되겠다더니 결국 ‘분열자(divider)’로 끝나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전직 칠레 대통령인 리카르도 라고스는 임기 말까지 70%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좌파 출신이면서도 우파를 포용하고, 우파적 정책을 과감히 시행했기 때문이다.

승진의 부담에서 해방된 이명박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최고지도자란 자리에 어울리는 일을 제대로 했다는 평을 듣는 것이다. 그 요체는 중도적 입장에서 전 국민을 끌어안는 것이다. 역시 문제는 자리고, 그 자리에 걸맞은 일을 하는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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