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금융개혁위원회의 미온적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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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금개위가 작성한 개혁안이 관련기관들로부터 저항을 받으면서도 우리 경제를 선진권으로 진입시키는데 충분하다고 볼 수 없는 점은 유감이다.중앙은행 독립문제와 금융감독체계 개편문제는 좀 더 근본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물가안정이고 이의 효율적 달성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통화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금융감독도 이러한 각도에서 보면 원칙적으로 예금자.소액투자자와 같은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표이나 세계적인 추세는 금융기관이 투명하게 운영되게 만들고 이에 의거해 실질적인 금융감독은 시장(市場)이 담당하도록 하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칙적인 시각에서 보면 중앙은행문제는 그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그 기능을 축소시키는 은밀한 장치를 어떻게 방지하느냐 하는 것이 개혁의 요체가 되어야 하며 금융감독체계문제는 앞으로 우리 금융산업이 어떤 형태로 발전하든 이에 대해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예금자와 같은 소비자를 적절한 선에서 보호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로 요약된다고 볼 수 있다.

중앙은행에 대해 표면상 독립성을 부여하고서도 실질적으로 이를 저해하는 방법으로는 첫째,금융통화운영위원들을 친(親)정부적 또는 친재경원적 인사만이 임명되도록 하는 방법이다.이 방법이 남아 있으면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훌륭한 규정을 두어도 전혀 소용이 없다.즉 금통운영위원들이 중앙은행 독립성 유지에 걸맞게 임명되도록 보장되기만 하면 한국은행 안에 금통운위가 있느냐 아니면 금통운위가 한은의 상위기관이냐 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

둘째,중앙은행이 무제한 중앙정부의 대출요청에 응해야 한다든가 또는

중앙은행에 재정증권 금리를 일정한 수준에서 안정시켜야 할 의무를

부과하면 이것도 중앙은행의 실질적인 독립성을 저해한다.

셋째,정부가 예컨대 중앙은행이 긴축적 통화정책을 쓸때 이를 상쇄하는

조치를 취할 의도로 감독기능을 중앙은행에서 분리시킨다면 이것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것이다.즉 감독기능을 중앙은행에서

분리시킨다면 이를 통화정책 간섭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필요하다.중앙은행과 감독기능이 분리돼 있는 독일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은행법에서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금융감독기능은 행정권에 속하므로 중앙은행이 독립되면 이는 당연히

행정부로 복귀돼야 한다는 논리는 일본 대장성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이는

화폐발행권이 원래 행정권에 속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어떤 권한을

행정부에 두느냐,독립된 기관에 위임하느냐는 어떻게 하는 것이 국가통치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국민 권익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법이론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금융감독기능이 어디에 속하든 금융자율화의 입장에서 보면

금융감독은 미리 정해놓은 객관적 기준에 의해 집행되도록 하고 재량적

금융행정의 범위는 최소화하는 것이 소망스럽다.그런데 감독기능의 객관적

집행을 보장하려면 감독기능도 정치적으로 중립적일 필요가 있음은

통화정책의 경우와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감독기능을 총리실로 귀속시킨다는 것은 정치적 중립의

필요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그리고 금융기법이 급속히

발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은행.증권.보험업의 성격이 서로 크게 다른 점을

고려하지 않고 이들 기능을 한곳으로 집중시켜 하나의 잣대로 집행하게

만드는 것은 감독기능의 기동성과 다양성을 모두 잃게 만들 위험성도 있고

금융감독을 시장에 맡기려 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독립된 중앙은행과 기동성있는 감독기구는'한보사태'를 예방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정부에 예속된 거대한 통합감독기구는'한보사태'를

은폐하는 일에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뿐이다.

<김한응 한국금융연수원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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