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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일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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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 대마도의 역사자료관 앞마당에는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이라고 새긴 큼지막한 바위가 세워져 있다. 평생을 조선과의 교류에 바친 유학자 겸 외교관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1668~1755)의 가르침을 새긴 비석이다. 일본에서도 잊혀져 있던 아메노모리를 재발견한 사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1990년 5월 방일 당시 국회 연설에서 성신외교 정신을 인용하며 한·일 우호를 강조한 뒤 아메노모리를 재조명하는 연구와 기념사업이 활발하게 일어난 것이다.

아메노모리보다 한 세기 후세 사람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실사구시의 자세로 일본을 연구했다. 『여유당전서』 가운데 ‘일본론’이란 제목으로 남긴 두 편의 글이 그 결과물이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가져온 서적을 정독한 다산은 일본을 학문 수준이 낮은 나라로 얕보던 조선 지식인의 통념에서 탈피한다. “일본은 원래 백제에서 책을 얻어다 보았는데 처음에는 매우 몽매하였다. 그 후 중국의 장쑤·저장 지방과 교역을 트면서 좋은 책을 모조리 구입해 갔고, 과거를 통해 관리를 뽑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학문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는 우리나라를 능가하게 되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다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의 일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학문과 문화가 발달하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악습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산의 일본론이 오류였음은 훗날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다산이 일본을 제대로 보지 못하여 그의 사후 70여 년 만에 한국을 삼킬 줄은 미처 예견하지 못했다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석무『다산 정약용의 일일수행』)

11일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참석한 만찬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다산을 언급했다. 만찬사에서 “다산은 편견과 명분론에서 벗어나 일본을 보고 배우려 했다”고 말한 것이다. 일본에 대한 편견을 깨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라면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다산의 일본론을 언급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없으면 훗날 큰 화를 입게 된다는 교훈이 그것이다. 천하의 대학자 다산조차 판단을 그르친 경우가 있었으니 학문 수준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 위정자들에게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교훈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