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필링>진정한 영화제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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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매년 5월이 오면 영화에 관계된 사람들은 프랑스 해변휴양지에서 열리는 칸영화제로 향한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영화를 출품하기 위해,또 어떤 사람들은 영화를 사기 위해 찾아간다.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영화를 팔기 위해,대부분은 영화를 구경하러 간다.

특히 올해 50주년을 맞아 집행위원장 질 자코브는 탐욕스러울 정도로-다른 영화제를 밟아가면서-화제작들을 끌어모아 호화찬란한 리스트를 만들었다.그 여파로 지난 2월의 베를린영화제는 볼품없는 실패작이 돼버렸고,8월에 열릴 베니스영화제는 소개할 작품이 없다고 울상이다.

우리들은 칸영화제라는 이름을 들으면 영화예술의 축제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그해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에 최고의 영화 대접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실제 과거 칸 그랑프리 영화들-마이크 리의'비밀과 거짓말',에밀 쿠스투리차의'언더그라운드',틴 타란티노의'펄프 픽션',제인 캠피언의'피아노',첸 카이거의'패왕별희'등-은 모두 영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은 모델들이다.그러나 칸영화제도 아카데미상과 마찬가지로 제도화된 시장에 지나지 않다.그것은 모든 영화제가 마찬가지다.수많은 영화들을 모아놓고,경쟁속에서 구경거리를 만들어내고,그 소비의 속도를 더욱 가속하는 것이다.

칸영화제는 표면적으로는 프랑스 영화제다.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가면을 쓴 유럽 중심주의 영화제라고 부르는 편이 옳다.이 세상에 예술 자체를 중심에 둔'순진한'영화제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왜냐하면 영화제를 치르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그래서 이권이 끼어들고,흥정을 하고,타협 끝에 그 해에 가장'이상적인 상업영화'에 작품상을 부여하게 된다.

칸영화제에는 정말로 역겨운 유럽 백인중심주의가 판을 친다.거기에 구색맞추기로 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영화들이 끼어 있다.시종일관 치사하고도 안쓰럽게 주변에서 중심을 향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가장 치사한 것은 주목을 끌기 위해 영화제를 목표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이다.이들은 차라리 상업영화들만도 못하다.우리들은 요즘 해외영화제에 출품하는 것이 무슨 훈장이라도 받거나,아니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품질검사라도 받는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다.고작 영화제 주변에 구색맞추기로 자리잡고 말 것을….이름도 모르는 삼류영화제에 초대받고 으스대는 모습은 새로운 사대주의적 꼴불견이고.정말 한심한 것은 그런 작품을 걸작으로 추켜세우는 매스컴들의 황당무계한 소란이다.

칸영화제가 시작될 때마다 내가 우울해지는 까닭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진정 좋은 영화는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며,우리는 이 시장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를 고르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정성일〈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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