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 맥주도, 키스도 거침없이 ‘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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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열차에서 자는 둥 마는 둥 밤새 뒤척이다 뮌헨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뮌헨역을 가득 메운 것은 울트라 수퍼 사이즈의 소시지와 반질반질한 프레첼이었다. “와, 독일인은 아침부터 거하게 먹는구나!” 소식가인 남편은 감탄 아닌 감탄을 내지르며 라커에 짐을 맡겼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곳은 뮌헨역에서 걸어서 20여분.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 여행객이 귀띔해 준 말이 떠올랐다. “오전에 자리를 잡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대요.” 브라질의 리우 축제,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불리는 데다 1810년 이래로 매년 7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모여든다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듯했다.

역시 여행객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독일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와 남자가 세상을 호령하듯 힘찬 발걸음으로 운동장만 한 크기의 부스로 모여들고 있었다. 맥주 브랜드가 마련한 수십 개의 대형 부스가 한데 모여 있는 이곳은 평상시에는 놀이공원인데 축제 기간에만 세상에서 가장 큰 맥줏집으로 돌변한다.

우리 부부는 독일 맥주 브랜드인 파울라너(Paulaner)부스로 들어갔다. 앤절리나 졸리를 닮은 종업원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겠다고 찾아온 동양인 커플이 신기한지 우리 주위를 맴돌며 계속 말을 시켰다. “너희 무슨 사이니?” “벌써부터 마시게?” “음식은 11시부터 주문할 수 있어.” 맥주잔은 무조건 1000㏄. 역시 맥주의 나라, 독일답다.

치킨과 학센(독일식 족발) 등의 안주와 함께 소주잔 들이켜듯 맥주를 즐기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나는 이미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는 연인들을 유럽 곳곳에서 목격해 내성이 생겼음에도 독일인은 차원이 달랐다. 한 손엔 맥주를, 한 손엔 여자의 가슴을 쥐고 ‘브라보!’를 외치는 애정 행각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또 키스는 얼마나 진하던지! 남편은 그 모습이 언짢은지 연신 “역시 마초의 나라군!” 투덜댔지만 나는 속으로 은근히 그 남자의 박력에 감탄했다.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삽시간에 늘어났다. 무대에서는 악사들이 독일 전통 가요를 연주하며 합창을 유도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동무를 하고 전통가요와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부르는 모습은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와 맞먹는 에너지를 내뿜었다. 어느 부스를 들어가든 이런 광경은 반복되었고, 그 무리에 끼지 못한 나와 남편은 영락없이 이방인의 꼴이었다.

유럽인만의 축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의 말대로 옥토버페스트는 유럽인이 한자리에 모여 맥주를 마시는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무리에 끼지 못하는 것이 나는 적잖이 서운했다. “여보야, 다음에 혹시라도 또 오게 되면 그때는 꼭 단체로 오자!”

우리는 이 축제에서 잊을 수 없는 광경 하나를 목격했다. 어느 독일인 노부부였는데 안주 살 돈이 없는지 집에서 가져온 과자를 남편이 꺼내놓자 아내가 다시 집어넣으라고 눈치를 주는 쓸쓸하고도 눈물겨운 모습이었다. 결국 그 부부는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맥주 한 잔씩만 마시고는 자리를 떴다. 남편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마디했다. “동독인이겠지.”

우리 부부가 독일 땅에 발을 붙일 때의 기분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는 분단국가라는 공통분모 때문일 것이다. 베를린이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으므로 우리는 여운을 접은 채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꿈에도 그리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가기 위해서다. 게다가 이번엔 닭장 같았던 6인승 쿠셋이 아니라 로맨틱한 2인용 커플 야간열차다. 밤새 열차가 달리는 동안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마치 나는 연애 초로 되돌아간 듯 가슴이 설렜다.

부부 is 끊임없이 타인의 사랑을 비교하고 질투하는 사람들

아임, 이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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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아내 아임(I’m)과 완전 소심하고 꼼꼼한 남편 이미리(2㎜)씨. 너무 다른 성격의 서른셋, 서른네 살 부부가 연재하는 ‘좌충우돌 부부 유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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