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김영삼 대통령의 고백을 듣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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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5천년동안 썩은 일을 고치려니 하루아침에 잘 안됩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인천북구청 세금 횡령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던 94년 추석때다.

金대통령의 이 말은 자신이 제시한 도덕주의의 극치였다.“자기 역사를 비하하는 사람은 역사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신채호(申采浩)선생의 역사접근 자세도 金대통령은 뛰어넘는 듯했다.

그렇지만 시중에선 조선시대 황희(黃喜)정승의 청백리 정신을 떠올리며“우리나라가 단군(檀君)이래 부패했다는 얘기냐”며 대다수가 반발했다는 것이 청와대 민심동향 기록이다.

그런 충격적 발언을 할 수 있을 만큼 金대통령의 문민통치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등잔밑에서 현철(賢哲)씨가 국정을 농단하고 돈을 받는 것에 어두웠을 때다.

金대통령은 취임과 더불어 돈과 정치의 족적에서 스스로를 지워버렸다.金대통령은“돈을 한푼도 안 받겠다”는 맹서로 자신의 과거를 용서하면서 기독교적 선지자(先知者)로 새 삶을 시작하는 인상마저 주었다.

대통령 되기 전에 돈을 받은 것은 민주화나 문민정권을 세우기 위한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한다는 지적이 정치권에 있었지만 개혁의 기세에 묻혔다.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들의 과거는 엄격히 단죄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이런 자세는 한보사건 이전까지 그런대로 통했다.이제는 이런 도덕적 독선은 상당부분 냉소의 대상이 돼버렸다.지금은 92년 대선자금중 남은 돈을 현철씨가 챙겼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金대통령이 돈과 거리를 둔 이유가 대선잉여자금 때문이라는 시선마저 정치권 일부에 있다.

대선자금 문제는 그만큼 金대통령이 넘어야 할 장벽인 것이다.청와대는“야당이 거론할 자격이 없다”며 미래지향적 자세를 강조한다.또한 대선자금의 개념이 모호한 만큼 정확한 산출의 어려움을 들고 있다.金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당에서 다 하고 나는 유세에 정신이 없었다”(1월7일)고 말했다.

그러나 올 12월 선거를 깨끗이 치르기 위해서도 92년의 자금은 왜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운지,사조직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고 썼는지를 듣고 싶은 여론은 여전히 강하다.미래를 위한 통과의례로 생각하는 것이다.

金대통령은 지난 3일 비서관들에게“우리의 개혁과 변화는'후세'가 평가해줄 것”이라고 말했다.자신의 치적을'재임중에'역사적 평가를 받으려던 자세에서 후퇴했다.그 개혁을 공인받기 위해서도 대선자금에 대한 金대통령의 용기있는 고백을 기대한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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