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기회의 밧줄을 잡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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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북한의 식량난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식량을 구하러 유랑민처럼 떠도는 사람들을 보면 북한에서 정상적인 경제체제는 이미 붕괴된듯 싶다.우리를 가슴아프게 하는 퀭한 눈동자의 북한 어린이들 사진을 보면서 국가의 위엄은 건전한 경제체제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값싼 노동력과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는 마치 사람의 옷 벗기기 내기를 벌였던 바람이 태양에 졌듯,자연스런 인간 욕구에 순응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패배하고 말았다.

사상 최악의 금융비리인 한보사건으로 온 나라가 불신의 불길에 휩싸여 있다.그 불길은 경제를 주름지게 하더니 곧 이어 정치권으로 번져 요새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속 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신문과 TV에는 온통 누가 누구로부터 얼마의 돈을 받았다느니 청문회에서 어떤 비리가 밝혀졌다느니 하는 얘기가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다.

물론 비리는 밝혀져야 한다.검찰이 전에 없이 활발한 수사를 펴고 있으므로 국민들은 더이상 한보에 빠져 발이 묶이는 국력의 낭비를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실제로 문제의'몸통'은 바로 우리들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위기는 곧 기회다.모든 변화는 늘 어려운데서 생겨나게 마련이고,거품이 걷히면 우리가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는지 보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문제는 위기의 뒷면에 숨어 있는 기회를 어떻게 찾아내고 이를 활용,발전시키는가 하는 것이다.아니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자진해 참가하던 새마을운동이나'더 열심히 일하는 해'라는 등의 구호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던 기억들이 지금은 한갖 하찮은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이 그 사이에 변한 때문일까. 지금 남북한이 그 강도는 다르겠지만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아마도 북한은 회생불능상태로 빠진듯 하다.

우리도 마냥 안심할 수만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우리는 위기속에 숨은 기회의 밧줄을 잡고 한 순간에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말콤 머저리지는 그의 저서'20세기의 고백'에서 칭찬받는 것,돈을 모으는 것,향락등 자기 만족을 위해 행한 모든 행동이 마치'혀로 핥는 것'같은 환상일 뿐이었다는 것을 고백했다.우리도 쉽게 향유할 수 있는 환상만을 지나치게 좇아온 것은 아닐까. 우리는 씹으면서 진정한 맛을 보려 하지 않는다.보람 있고 가치 있는 것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시 차분해져서 벽돌을 한장 한장 쌓는 심정으로 되돌아가야 한다.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비리 얘기보다는 수출에 성공한 젊은 기업가를 얘기하고,대권보다는 통일을 주제로한 대화를 펴나갔으면 싶다.

이상철 <한국통신프리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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