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내세워 은행부실 털기 -부실채권정리 전담기구 설치 의미와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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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23일 발표한 부실채권정리전담기구 설치는 한마디로'90년대식 부실기업 처리 해법'이다. 80년대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부실기업을 교통정리했다면 이번에는 민간베이스의 전담기구를 내세워 은행부실을 털어내자는 것이다.

정부가 직접 나설 경우 관치금융을 비판하는 여론도 감당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부개입을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리전담기구의 설립은“꼭 진로문제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은행부실채권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강경식(姜慶植)부총리가 나서서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말 현재 은행의 담보부 부실채권(고정)이 9조4천억원,무담보부실채권(추정손실.회수의문)이 2조4천억원등 총 11조8천억원(총여신의 4.1%)에 달하고 있다.이런 상태를 그냥 두고서는 어떤 금융개혁노력도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기구가 제대로 가동될지는 미지수다.아직 은행과도 구체적인 협의가 되지 않은 상태다.은행이 부실채권을 순순히 기구에 넘길지도 불투명하다.

실제로 은행 관계자들은“부실채권의 멍에를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조치”라고 반색하는가 하면“은행이 출자해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방안은 제꼬리를 잘라먹는 격”이라고 반발하는등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또 재원조달도 문제다.기구의 수익성이 불확실한 만큼 기구가 자체적으로 발행한 채권을 인수하겠다는 기관이 얼마나 될까 하는 점이다.이 경우 정부가 나서서 강제적으로 채권을 떠안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처음 시도되는 제도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을 문답풀이로 알아본다.

-모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기구에서 처리되나.“아니다.우선 은행에 한해 시행되고,상황을 봐가면서 2금융권으로 확대하게된다.은행이 부실채권을 기구에 넘기기 싫으면 계속 갖고 있어도 된다.” -무담보 부실채권 처리는.“은행이 기구에 처분을 의뢰할 수 있다.기구는 공공기관 신용정보자료를 활용해 채무자 주소지 확인,은닉재산 조사를 통해 부실채권 회수노력을 기울이게 된다.이렇게 해서도 돈을 못찾으면 은행이 손실을 안게된다.” -담보부 부실채권 처리는.“6개월이상 연체된 담보부 부실채권은 은행이 아예 기구에 매각할 수 있다.예컨대 은행이 1백억원 여신에 담보가가 50억원에 불과한 부실채권이 있다고 치자.이 경우 기구와 협의해 50억원에 넘기면,은행은 50억원을 손해보지만 급한대로 5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기구의 입장에서는 부가가치를 높여 나중에 60억원에 팔면 10억원 이익,여건이 어려워 40억원에 팔면 10억원의 손실을 감수하면 된다.” -부실징후기업의 부동산 매각을 돕는다는데. “그동안은 부실징후기업이 자구노력을 위해 부동산이나 계열사를 파는데 혼선이 많고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았다.앞으로는 부실징후기업과 은행이 협의해 매각할 부동산과 계열사를 기구에 매각할 수 있게 된다.이렇게 되면 매각대금이 곧바로 은행에 들어와 급한 대출금을 끌 수 있다.기구는 나중에 부동산과 계열사를 제3자에게 팔면 된다.” -성업공사는 어떻게 되나.“이름이 바뀌고 조직도 커진다.지위도 지금은 산업은행 출연기관이지만 금융기관 출자회사로 바뀐다.” 〈고현곤 기자〉

<사진설명>

경제대책회의 23일 국회에서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각당

정책위의장.경제단체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경제대책회의가 열렸다.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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