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찮은 거부 반응 … 약효 느릴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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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28면

‘위기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Crises)’. 요즘 미국 경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위기의 진앙쯤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경제회복의 어머니(The Mother of Recoveries)’라는 얘기도 있다. 미 경제가 회복해야 글로벌 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위기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회복의 견인차인 셈이다.

오바마 新뉴딜 처방

이런 미 경제가 올해 두 가지 힘에 의해 좌우될 듯하다. 이른바 자유낙하(침체)와 경기부양의 힘이다. 자유낙하는 추락하는 미 경제다. 경기부양은 새로 출범할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할 신뉴딜이다.

미 경제의 자유낙하는 기정사실로 비춰지고 있다. 주가와 집값 추락에 이어 금융패닉이 발생했다. 이제는 실물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미국식 표현대로 월스트리트(금융권)를 뛰어넘어 이제는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가 곪고 있는 모양새다. 주가·집값 등 자산가격이 일시 반등하며 희망을 지필 수도 있지만, 소비 감소→산업 생산 감소→실업 급증→소비 추가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올해 미 경제 흐름이라는 데 별반 이견이 없어 보인다.

변수는 오바마의 신뉴딜 추진력이다. 이는 의회가 얼마나 많은 자금을 쓸 수 있도록 동의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또 오바마가 추진할 경제 시스템 개혁도 의회의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오바마 진영은 지금 의회와 숨가쁘게 협상하고 있다.

취임 100일 내 승부 걸 듯
긴장·기대·우려가 시장을 뒤덮고 있는 순간 새 권력자가 파격적 조치를 내놓으며 이른바 경제심리를 호전시킨다. 위기의 순간 시장이 고대하는 메시아다. 이런 기대를 가장 극적으로 채워 준 인물이 바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그는 1933년 3월 4일 취임했다. 넘치는 실직자, 작동하지 않는 증시, 줄줄이 무너지는 은행들…. 그가 취임선서를 할 당시 상황이다. 그는 취임 하루 뒤 전격적으로 미국 전 은행의 영업을 중단시켰다. 루스벨트의 이른바 ‘100일 계획’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기간 뉴딜정책에 필요한 모든 법을 제정했다. 나날이 새로운 법이 쏟아지고 신종 대책이 나왔다. 이런 조치의 효과를 두고 나중에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지만 당시 절망에 빠진 미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데는 성공했다.

오바마는 ‘루스벨트 100일’의 재연을 꿈꾸고 있다. 루스벨트만큼 전격적이지 않더라도 취임과 동시에 분위기를 확 바꿔 놓을 방안을 내놓으려 한다. 파격적 경기부양책뿐 아니라 의료보장 시스템 개혁 등 이른바 개혁입법을 마칠 계획이다. 시간을 끌수록 변화에 대한 저항이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단 정치 분위기는 오바마 편이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경제위기 속에 변화를 내걸고 미 역사상 첫 유색인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말한 대로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할 정치적 명분은 충분히 확보한 셈”이다. 루스벨트가 거품 이후 발생한 대공황 순간 집권했던 33년 당시와 견줘 오바마의 정치적 명분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월스트리트는 오바마 정책이 효과를 낼 것이란 전제 아래 올 하반기 경기회복을 점치고 있다. 경제 전문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은 미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까지 마이너스 성장하다 7월께 회복될 것으로 본다. 실업률은 경기회복 시점보다 늦게 연말까지 치솟아 8.2%에 이른 뒤 내년부터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소비자물가는 올 3분기에 2분기에 비해 0.45% 떨어지며 짧은 디플레 증세를 보이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민주당 우파 설득해야
오바마 취임이 보름쯤 앞으로 다가오면서 비관적 예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오바마가 루스벨트에 버금가는 파격적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적잖은 민주당 의원이 오바마와 생각을 달리하고 있는 탓이다.

그들은 “정부가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으키고 있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주장을 지지한다. 정부의 규모를 가능한 한 줄여 시장 개입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재정정책 등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는 오바마와 반대 입장이다.

요즘 그들은 경기부양도 중요하지만 재정적자가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목청을 키우고 있다. 오바마가 요구하는 파격적 경기부양에 반대한다. 오바마 진영이 내심 원하는 1조 달러 절반 수준인 5000억 달러 선을 제시하고 있다. 미 GDP의 3% 수준에 지나지 않는 규모다. 미 정부가 월스트리트 금융회사에 지금까지 투입한 세금 1조2000억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 의회 안팎에선 경기부양에 7000억 달러 정도 쓰는 게 가능한 수준이란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취임과 동시에 집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바마 측과 의회 간 협의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핵심 경제참모인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내정자는 최근 “경기부양이 빠른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며 “따라서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리 기대를 조절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오바마가 극복해야 할 게 민주당 우파의 반대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범보수 진영의 반발이 오바마에게 더 큰 어려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럴 만한 구석이 엿보인다. 오바마는 지난 대선 기간뿐 아니라 당선 이후 기자회견 등에서 긴급구제(Relief)뿐 아니라 부흥(Reconstruction)과 개혁(Reform)을 추진할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일단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되살리면서 정보통신망 등을 확충하는 부흥 정책을 추진할 전망이다. 또 금융 법규를 강화하는 등 이른바 개혁 작업도 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오바마가 긴급 구제와 부흥 단계를 지나 개혁에 초점을 두기 시작하면 루스벨트처럼 보수 진영의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미 역사가인 하워드 진은 최근 뉴욕 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경고했다.

실제 루스벨트는 1차 뉴딜(1933~35년)이 끝난 직후 강한 반발에 시달렸다. 보수 진영이 위헌 소송을 줄줄이 제기한 데 대해 미 연방대법원이 농업조정법 등 핵심 뉴딜 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루스벨트는 위헌 판결이 내려진 법을 수정해 2차 뉴딜(36~39년)을 겨우 추진할 수 있었다.

현재 이와 비슷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루스벨트 뉴딜정책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찬반 양론이 진행되고 있다. 보수 진영은 루스벨트가 시장이 제 구실을 못 하도록 해 부작용만 키웠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오바마 취임에 앞서 견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리엘 루비니(경제학) 뉴욕대 교수 등 비관론자는 “오바마가 기대만큼 경제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미 경제가 올해 내내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봤다. 실업률도 10%를 훌쩍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지어 디플레가 발생해 미 중앙은행의 제로금리와 돈 퍼붓기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미 경제는 올 하반기가 아니라 내년에나 회복하기 시작하게 된다. 오바마가 미국에 변화와 희망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당선되기는 했지만 경제는 그의 선거만큼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뉴딜’이란 말은

미 경제학자 겸 공학자인 스튜어트 체이스가 1932년 초 발표한 책 『뉴딜』에서 유래했다는 게 통설이다. 체이스는 그해 미 시사주간지 ‘뉴리퍼블릭’에 기고한 ‘미국인을 위한 뉴딜’이란 글에서 과감한 경기부양으로 구매력을 키워 소비를 늘려야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제안은 루스벨트가 33년 이후 실시한 정책과 거의 비슷했다. 루스벨트는 3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뉴딜’을 천명했다. 루스벨트 연설 참모인 새뮤얼 로스먼이 체이스의 책이나 글을 봤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뉴딜정책 내용이 체이스의 제안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체이스를 ‘뉴딜의 원조’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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