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 81세로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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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미국의 대표적인 주류 정치학자인 새뮤얼 헌팅턴(사진) 하버드대 교수가 24일(현지시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버드대는 27일 이 사실을 홈페이지에 뒤늦게 공개했다. 2007년 강의를 마감한 헌팅턴은 매사추세츠주 휴양지인 마서즈 빈야드에서 지내다 삶을 마감했다. 81세.

뉴욕 타임스(NYT)가 그를 애도하면서 밝힌 대로 헌팅턴은 세계 최고의 대학 ‘하버드’가 자랑하는 대표 인물이었다. 1927년 뉴욕에서 태어난 헌팅턴은 46년 예일대를 졸업했다. 이어 48년 시카고대에서 석사 학위를, 51년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20대 초반에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그 뒤 58년 동안 하버드대를 떠나지 않고 학자의 길을 걸었다. 헌팅턴 본인 역시 지난해 강의를 마감하면서 “내 인생을 통틀어 하버드에서 학부생들을 가르쳤던 경험보다 소중했던 기억은 없다”라고 회고했다.

헌팅턴의 60년 지기이자 하버드대 명예교수인 경제학자 헨리 로소브스키는 “헌팅턴은 하버드대를 위대하게 한 학자였다”라며 “그가 쓴 모든 책이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라고 칭송했다.

헌팅턴은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정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미국 정부와 민주주의, 정치발전 등과 관련된 저서를 17권 썼다. 첫 저서인 『군인과 정부』는 1957년 발간돼 지금까지 15판이 나왔을 정도로 정치적 영역과 군의 문제를 다룬 역서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지난해 발간 50주년을 맞아 미 육군사관학교 심포지엄의 주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헌팅턴은 96년 냉전 이후 세계의 갈등구조를 주요 문명의 문화·종교간 충돌이라는 틀로 분석한 『문명의 충돌』을 펴내면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 책에서 “냉전 후 국가간 무력충돌은 이념적 마찰이 아니라 서구(미국과 유럽)와 라틴·이슬람·아프리카·동방정교(러시아)·힌두· 일본, 중국문화권(중국·한국·베트남) 등 세계 주요 문명의 문화와 종교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전 세계 39개 언어로 번역됐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헌팅턴은 또 2004년 그의 마지막 저서 『우리는 누구인가-미국의 정체성 도전』에서 “히스패닉 계의 거대한 유입으로 미국 사회가 2개의 언어(영어·스페인어)와 2개의 사회로 나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의 주장은 늘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헌팅턴은 교수 생활중 하버드대 국제관계연구소 소장과 존 올린 전략연구소 소장, 미국 정치학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현실정치에도 일부 참여해 허버트 험프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자문역을 지냈다. 헌팅턴은 사인은 심장 질환과 당뇨병의 합병증이라고 하버드대 측은 설명했다. 장례식은 그가 40년간 여름휴가를 보냈던 마서즈 빈야드에서 치러질 예정이며, 하버드대는 별도로 내년 봄에 추모 행사를 열 계획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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