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 시시각각

자이툰 선조들의 피와 땀과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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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60년대 한국의 부두엔 태극기의 물결이 있었다. 수송선을 가득 메운 장병이나 부두의 가족·시민·여고생이나 모두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리고 부두엔 노래가 울려 퍼졌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다.”

노래와 가족의 눈물을 뒤로하고 한국의 남아들이 베트남으로 갔다. 혹자들은 파월 장병을 ‘미국의 용병’이라고 주장하지만 베트남 파병은 건국 이래 최초로 국가가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을 해외에 보낸 것이다. 약 5000의 젊은 목숨이 이국땅에서 꽃잎처럼 졌다. 그러나 베트남전 특수로 한국은 경제개발의 돈줄을 상당히 확보할 수 있었다. 65년부터 72년까지 장병들이 벌어들인 달러는 모두 2억2700여만 달러였다. 66년 한 해 대한민국이 수출한 2억5000만 달러와 거의 맞먹는다.

74년 중동의 원유값이 4배 가까이로 치솟았다. 한국은 73년 원유 수입에 3억 달러를 썼는데 74년엔 11억 달러로 뛰었다. 경상수지 적자까지 더해 나라가 부도날 판이었다. 성장 가도를 쌩쌩 달리던 대한민국에 첫 번째 위기가 온 것이다. 청와대의 김정렴 비서실장과 오원철 경제수석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탐문했다. 일본의 전략에 귀가 쫑긋했다. 기름값이 올라 중동에 오일달러가 넘쳐나니 중동에 진출하려 한다는 것이다. 김 실장과 오 수석은 “우리도 중동 진출로 위기를 돌파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오 수석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인의 강점 세 가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첫째는 우수한 인력입니다. 중동은 고온이고 사막지대며 종교나 풍습이 다르고 오락도 없습니다. 선진국 기술자는 돈을 아무리 준다 해도 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수십만 명의 제대장병이 있습니다. 월남 참전의 경험도 있습니다. 각하, 에너지 위기는 일종의 국난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린 여자 근로자가 수출을 해서 경제를 지탱해 왔습니다만 이번에는 남자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둘째, 우리나라 남자 기능공은 선진국보다는 인건비가 훨씬 싸고 기술 수준은 후진국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셋째는 공기 단축인데 우리나라 건설업체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이미 돌관(突貫)기법을 익혔습니다.”

박 대통령은 빙그레 웃었다. 대통령의 기분이 좋아지자 오 수석은 하나를 추가했다. “각하, 중동에 진출하려면 뒷거래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방면에는 소질이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파안대소했다. (오원철, 『한국형 경제건설 제6권』)

저력을 축적하고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한국은 나라 밖으로 국민을 보냈다. 그 역사가 오늘의 대한민국에 기여했고, 자이툰으로 이어졌다.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중동에도 갔던 남자들도 많았다. 그들이 벌어들인 달러로 가정이 살찌고 국가가 부흥했다. 드라마로 위기를 이겨낸 한국에 2009년엔 어떤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