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가수 발 앞에 정확히 ‘꽃다발 명사수’ 은행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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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10면

미국의 투자은행가 존 칼스(66)는 밀라노 라 스칼라, 빈 슈타츠오퍼, 런던 코벤트가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시즌 오프닝 공연이라면 빼놓지 않고 관람한다. 그는 아홉 살 때부터 오페라 극장에서 커튼콜 때 좋아하는 가수에게 꽃다발을 던져 온 사람으로 유명하다. 꽃다발을 준비할 때도 나름의 법칙이 있다. 빨간 장미 열여덟 송이, 특별한 경우엔 서른 송이를 던진다. 줄기를 충분히 길게 하고 가시를 제거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의 무대이야기

레몬과 양치 이파리로 장식한 다음 빨강 리본으로 묶는다. 한 다발에 100달러(약 13만원). 맨해튼의 ‘이선의 정원’에 근무하는 플로리스트 나초 레이스에게 전화하면 척척 알아서 만들어 준다. 그는 오페라 극장 인근의 레스토랑 지배인에게 중간 휴식 때까지 꽃다발을 냉장고에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한다. 런던 코벤트가든에선 골목 건너편의 베르토렐리에 맡긴다.

꽃다발을 던지려면 1층 1열에 앉아야 한다. 멀리서 던지면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다른 관객의 머리 위에 떨어질 수 있다. 칼스는 테니스·골프·수영을 해온 덕분에 꽃다발을 던질 때 속도도 빠르지만 떨어지는 위치도 자로 잰 듯 정확하다. 흉기를 던지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항상 두 손으로 던진다. 아쉽게도 런던 코벤트가든 극장은 1999년 재개관하면서 꽃다발 던지는 게 금지됐다.

3월 1일 바르셀로나 리체우 극장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상연된 도니제티의 오페라 ‘루크레지아 보르지아’는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의 무대 인생 40주년, 바르셀로나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커튼콜 때 관객은 꽃다발 선물도 모자라 발코니석에서 오색 종이를 무대 쪽으로 날렸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선 ‘오페라 입석 관람자 협회’(Opera Standee Association) 회원들이 던진다. 누구에게 꽃을 던질 것인가는 막간에 격렬한 토론을 거쳐 결정한다.

국내에선 객석으로 꽃다발을 들고 들어갈 수 없다. 물품 보관소에 맡겼다가 공연이 끝난 뒤 전달해야 한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11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테너 김우경의 독창회에서는 커튼콜 때 객석에서 대여섯 사람이 꽃다발을 들고 나와 무대로 던졌다.

꽃다발은 다른 관객에게 열렬하게 박수를 보내라는 신호탄이다. 물론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꽃다발 대신에 썩은 달걀이나 토마토를 던지기도 한다. 2004년 5월 런던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에서 상연된 ‘발퀴레’를 보고 나서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의 평론가 리처드 도멘트는 이렇게 썼다. “썩은 토마토를 무대를 향해 던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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