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로기쁨찾자>장애인 보금자리 된 소쩍새마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강원도원주시판부면금대2리'소쩍새마을'.95년 7월 전 원장 정승우(법명 일력)씨의 비리 행각이 드러나 하루 아침에 폐허화된 바로 그곳이다.사건 직후 조계종 산하 중앙승가대학에서 인수,지난해 2월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원장 普覺스님)

으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원생 1백95명은 대부분 지난해 들어왔다.이들중 90%에 가까운 1백74명이 지체부자유자이거나 뇌성마비에 걸린 장애인들.제 손으로 밥 한숟가락 떠먹지 못하는 원생들이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이들을 수발할 직원은 15명.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절실한 곳이다.

지난달 27일 서울에서 2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대한항공 여승무원 동우회원들이 이곳을 찾았다.

회장 이효숙(李孝淑.45)씨를 포함한 20명의 회원들은 오전11시쯤'소쩍새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해태제과.애경유지에서 협찬받은 과자와 세제등 선물보따리부터 풀었다.곧 서너명씩 짝을 지어 식당으로,목욕탕으로,세탁실로 바쁘게 걸음을 옮

겼다.

이곳의 많은 원생들은 남의 도움 없이는 대소변도 제대로 못가리는 형편이다.그러다보니 하루에도 몇번씩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다.10여명이 2시간 가까이 씨름하고서야 그날 해야할 빨래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목욕탕은 여기저기 널린 오물로 숫제 공중화장실을 방불케 했다.

냄새 때문에 코를 싸쥐어야 했지만 동우회 총무 김현순(金賢順.40)씨등 3명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목욕탕 청소부터 시작했다.줄을 선 아이들을 한명씩 붙잡고 자신의 아이를 씻기듯 목욕을 시켰다.

항공기 승무원 출신답게 자태가 너무 고와 손가락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살았을성 싶은 그녀들이었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 봉사는 식당에서,화장실에서 계속됐다.오후2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친 회원들은 겨우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원내 노래방에서 원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젖먹이 아이들에게 잠시나마'엄마'노릇을 해주는 것으로 오후3시쯤 자원봉사 활동을 마쳤다.

이같은 자원봉사자의 줄이은 손길로 이곳은 이제'사람 사는 마을'이 됐다.원주 시내에서 택시로 40분은 족히 걸리는 외진 곳이지만 자원봉사 발길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거의 매일같이 자원봉사를 펴는 사람들도 20여명을 넘는다.

한달에 두세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자원봉사 조직은 10여개 팀에 1백여명을 이미 넘어섰다.

회원들의 봉사활동을 지켜보던 보각스님은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이'소쩍새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이 마을의 소쩍새는 더 이상 구슬피 울지않는 것이다. 〈윤석진 기자〉

<사진설명>

노력봉사를 마치고 잠시 어린아이들에게'엄마'노릇을 해주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한항공 여승무원 동우회원들.오른쪽 끝이 회장 이효숙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