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재계새별>5. 대교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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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교학상장(敎學相長)'(학문을 배우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가르치면서 배우고,배우면서 가르친다)

서울봉천동 대교그룹 본사 17층 강영중(姜榮中.48)회장 접견실에 큼직하게 걸려있는 휘호다.姜회장의 좌우명이다.

姜회장에게 대뜸“왜 그렇게 공부에 관심이 많으냐”고 물었더니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공부를 해야할 때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었다.건국대농대 출신의 姜회장은 요즘도“공부를 잘했으면 농대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姜회장의 솔직한 성격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교육문화그룹 회장답게 姜회장의 화두(話頭)는'인간'이다.그는 인간중심의 사고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정신과 몸의 건강이라는게 姜회장의 지론이다.

사시(社是)를'건강한 인간,건강한 가정,건강한 사회'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건강하고 창조적인 인간정신을 바탕으로 임직원에게는 꿈과 보람을,고객에게는 만족과 감동을 주어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기여하자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思考'신념

姜회장은 임직원들에게“과정을 무시하는 결과론에 집착하지 말고 윤리관과 도덕관을 바로세우자”고 강조한다.

'눈높이교육'으로 널리 알려진 대교그룹의 모체는 일본의'구몬(公文)수학'에서 이름을 따 76년 창립한 공문수학연구회.

姜회장이 대학졸업 직후 27세의 젊은 나이에 어린이 교육사업(학습지 시장)에 뛰어든데는 재일교포 사업가인 숙부 강대희(姜大禧.70)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서 건자재사업을 하던 숙부께서 사촌동생들이 일본에서 구몬수학으로 공부를 해 많은 효과를 보고 있으니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습니다.사실 그땐 지금처럼 사업이 잘될 줄은 모르고 시작했지요.주위에선 모두 잘 안될 거

라고 하더군요.은근히 오기가 생겼습니다.”

姜회장은 일본 구몬수학의 교육방법중 국내 현실에 맞지 않는 학원식 교육방법은 빼고'능력별 프로그램 학습방법'만 도입,당시 국내에 폭넓게 확산된 그룹과외에 접목함으로써 독창적인 교육방식을 개발했다.

85년 로열티 문제로 일본측과 분쟁이 발생하자 87년 상호를 대교로 바꾸고 91년7월에는 상표를'눈높이'로 바꿨다.

'눈높이'는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전해오는 일화에서 따온 상호.미국 초등학교의 한 교사가“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가르쳐야 한다”면서 아이들과 키를 맞추기 위해 꿇어앉은 자세로 그림을 설명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대교가 내보낸“어린이를 이해하려면 눈높이를 맞춰 어린이를 쳐다봐 주십시오”라는 광고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姜회장의 교육사업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80년7월 단행된 과외금지조치로 姜회장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1백명의 교사와 4천2백명의 회원을 갖고 있던 대교는 이 조치로 2명의 사무국장과 교사 2명만 남게됐고 회원수도 4백명으로 격감했다.

“어느 정도 틀을 잡아가던 시기에 아무 예고없이 내려진 조치여서 회사는 물론 나 자신도 방향타를 잃고 휘청했습니다.그러나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지금의 '가정방문식 학습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姜회장의 말이다.

과외 금지로 한때 타격

87년1월 법인으로 바꾼 대교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10년만인 96년에는 전국에 1백70만명의'눈높이회원'을 확보했다.그룹 총매출액도 5천2백15억원을 기록했다.과외는 금지됐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의 높은 교육열로 수요는 늘어

만 간 것이다.

업종도 유통.정보시스템.빌딩및 부동산 관리.광고.금융서비스등으로 다양해지면서 계열사가 9개로 늘었고 임직원도 1만6천여명(눈높이 교사 1만여명 포함)으로 불어났다.학습지 사업(4천1백20억원)이 그룹 전체 매출액(5천2백15억원)

에서 차지하는 비중(96년 기준)은 80%선.

지난해 7월1일에는 그룹경영 선포식을 갖고'종합교육정보서비스그룹'으로 닻을 올렸다.첨단유망업종으로의 사업다각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비전도 마련했다.현재의 학습지 시장이 길어도 5년이내에 벽에 부닥칠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정보통신을 이용한 새로운 학습지시장을 열기로 하고 이를 위해 교육에 관한 데이터뱅크 사업도 시작했다.지난해 교육정보연구소.영상연구센터.미디어 연구센터.디자인연구센터등에 2백5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들인데 이어 올해도 3백억원을 투입

할 예정이다.주력기업인 ㈜대교는 올해 기업을 공개하고 우리사주제도를 도입할 계획도 마련했다.외국보험회사와 합작으로 보험업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지난달 28일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방수현등을 주축으로 배드민턴팀을 창단하는

것을 계기로 스포츠용품 판매에도 나설 예정이다.

대교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매달 두 차례 열리는 사장단회의.매달 둘째주에는 회사에서 姜회장 주재로 공식적인 회의를 갖고 넷째주에는 음식점에서'정보교류회의'를 갖는다.요즘은 이른바'캔회의'로 불리는 정보교류회의의 비중이 부쩍 높아졌다.

다른 그룹과 달리 대교그룹의 사장단에는 사범대(3명)와 농대(4명) 출신이 유난히 많다.

姜회장은 이에대해“농대 출신과 사범대 출신은'뿌린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라며“이같은 체험이 그룹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올해초 그룹 고문으로 영입된 송자(宋梓)전 연세대 총장은 매주 하루 그룹에 나와 경영전반에 관해 姜회장에게 자문해주고 있다.이선기(李宣基)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대전엑스포 과학공원의 위탁경영을 맡고 있는 엑스피아월드 대표이사 회장으

로 일하고 있다.

㈜대교의 대표이사인 강학중(姜中.40)사장은 姜회장의 둘째 동생이다.姜회장의 첫째 동생인 강경중(姜慶中.45)씨는 대교 전무로 있다 87년초 독립해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충구(李忠九)대교유통 사장은 姜회장과 건국대농대 동기동창으로 제약회사에 잠깐 근무하다 대교에 합류한 창업 공신이다.

정금조(鄭錦祚)대교컴퓨터 사장은 姜회장의 고향(경남 진주)후배로 현대전자 출신.

유선방송의 어린이 채널인 대교방송의 이승우(李昇雨)사장은 서울대 사대 출신으로 삼성 비서실.제일기획 상무등을 거쳤다.

2010년 30대 그룹 목표

이달말 출범하는 대교파이낸스를 맡을 장세화(張世和)사장은 제일합섬.사조상호신용금고를 거쳐 94년 대교의 기획담당 상무로 영입됐다.윤현중(尹賢重)하얀마음(빌딩관리및 종합인테리어)사장은 눈높이 교사 출신으로 비서팀장을 거쳐 대표이사로

전격 발탁됐다.

대교그룹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많다.가장 큰 현안은 연간 1백30억원에 달하는 엑스피아월드의 적자를 줄이는 일이다.대교측은 94년 정부에 매년 20억원의 수수료를 주기로 하고 20년간 이 공원의 위탁경영 계약을 했었으나 정부측에

서 창의적인 경영활동을 보장해 주지않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교는 세계적인'교육문화정보 서비스기업'으로 성장,2010년에는 연간 매출액 20조원의 국내 30대 그룹으로 진입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방송.광고.신문을 포함한 종합 멀티미디어업체로 성장하고 ▶물류.전문점.통신판매등 신유통사업을 전개하고 ▶건강.환경등 생명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건설엔지니어링 사업에 진출하는 것등을 골자로 하는'21세기 사업비전'

을 마련했다.

학습지 전문업체로 출발한 대교가 멀티미디어 정보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에 잇따라 진출,30대그룹에 연착륙할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의준 기자〉

(다음은 태평양그룹)

<사진설명>

교육문화사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교그룹은 멀티미디어.케이블TV.유통업등 사업분야를 다양하게 개척하고 있다.가운데는 서울봉천동에 있는 그룹 본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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