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군은 조선의 선각자 … 토벌작전 큰 원한 남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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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894년 동학농민군에 대한 일본군의 ‘토벌 작전’을 강력히 비판했던 당시 일본 지방 신문의 사설이 공개됐다. 22~23일 부산에서 열린 ‘한·중·일 전쟁의 유적을 평화의 초석으로’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창원대 경남학연구센터가 공동주최했다. 이노우에 가쓰오 일본 홋카이도대 명예교수는 22일 발표에서 동학농민전쟁 당시 일본 가가와현에서 발행된 가가와신보(香川新報)의 연재 사설을 소개했다.

이 신문은 1894년 12월20일자 1면 사설에서 동학농민군의 지도부를 ‘조선 국민 중의 선각자들’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23일자 1면 사설에서도 일본군의 동학 농민군 ‘토벌’을 비판하고 있다. “어찌 원한을 후세에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0명이 죽으면 1000명이 원망하고, 1000명이 쓰러져 죽으면 1만 명이 원망한다. 아아! 어찌 우리의 덕을 펼치는 일에 유리할 수 있겠는가”라는 내용이다. 또 이와 함께 신문은 당시 동학농민군 학살을 진두 지휘한 이노우에 가오루 조선공사의 이름을 거명해 비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노우에 교수는 지난 10년 간 동학농민전쟁 연구에 매달려 온 일본 학자다. 그는 일본군 인천 병참본부의 ‘진중일지’라는 사료를 발굴해 동학농민군에 대한 조직적인 ‘살육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학계에 소개한 바 있다. 이노우에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도 “일본 방위성에 보존돼 있는 ‘진중일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본군의 동학군 포위섬멸작전이 놀랍게도 조선 현지의 일본군이 아니라 히로시마 대본영에서 총리대신이나 참모본부에 의해 입안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 나선 박맹수 원광대 교수는 “당시 일본군은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전쟁 보도에 엄격한 검열을 가했다”며 “전쟁의 진실이 매우 제한적으로 알려지는 상황에서 동학농민군을 높이 평가한 신문 사설의 존재는 귀중하다”고 말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중국·일본·대만의 학자들이 모여 전쟁과 침략의 과거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평화의 21세기를 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다.

기조 강연을 한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동북아에 견실한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발판은 전쟁에 대한 기억을 바로 잡는 것”이라며 “유럽 등지에 존재하는 ‘국경을 넘는 평화공원’과 같이 동북아 국가들에 흩어져 있는 전쟁 유적지들을 공통의 ‘평화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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