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詩 가사로 한 '이땅에 살기 위하여' - MBC서 방송금지 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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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차세대 로커로 기대를 모으는 윤도현이 1년6개월만에 새로 낸 2집 가운데 80년대'민중시인'박노해(현재 수감중)씨의 시를 랩으로 부른'이 땅에 살기 위하여'가 MBC에 의해 방송금지판정을 받았다.최근 이 방송사 가요심의위원회는 노랫말이 생경하고 직선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방송에 부적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 노래는 윤도현이 지난해 고향(파주)의 수해현장에서 주민들의 보상시위가 경찰에 의해 무산되는 것을 보다 우연히 떠오른 박노해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찬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폴 깔고/가면 얼마나 가겠나 시작한 농성/삼백일 넘

어 쉬어터진 몸부림에도/대답하나 없는 이 땅에 살기위하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MBC관계자는“일부 언사가 선동적이어서 우리 사회 보수층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이에대해“일부 계층을 지나치게 의식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박노해씨의 시는 이제는 역사의 한페

이지로 넘어간 80년대 노사갈등을 다룬 것으로,노동운동계 스스로 수백일간 농성을 벌이는 과격투쟁을 포기한 현 시대에는'선동시'로서의 용도가 폐기된 일종의 문학작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또 이 노래가 내용을 떠나 음악적으로 성과가 높은 점도 방송금지조치에 아쉬움을 더하는 대목이다.거칠고 단순한 편곡으로 저항성 부각에만 치중한 과거운동가요와 달리 민중시에 랩.제창등 새로운 요소를 도입해 록이란 대중가요로 재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아무런 생각없이 감탄사나 질러대는 댄스음악 아니면 실연의 슬픔을 호소하는 발라드같은 음악은 무차별적으로 방송하는 반면 사회나 문화를 다룬 진지한 노래는 듣기 힘든 방송 현실을 보더라도

이번 조치는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MBC도 달라진 시대현실을 고려해 부적격판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 사실이 엿보인다.5명의 심사위원중 2명은 “이 정도면 우리 사회가 수용가능한 내용”이라며 적격판정을 내렸다고 한다.KBS와 SBS의 심의결과가 주목된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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