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93년 추석때 금융기관 46명에 8천여만원 - 명단적힌 자료 단독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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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태수(鄭泰守)한보그룹총회장이 검찰에서 은행장등 금융계 고위인사들에게 로비했다고 밝힌 가운데 한보그룹은 주요 금융기관의 부장급 이하 실무자들에게도 명절때마다 인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한보가 그동안 거액의 대출을 받기위해 거래 금융기관 임직원들에게 조직적으로 로비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은행장이나 고위 임원들에게는 鄭총회장등이 직접 나서 거액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24일 중앙일보가 단독입수한 한보그룹 내부자료에 따르면 한보측은 은행대출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93년 가을 추석을 전후해 7개 금융기관 46명에게 8천5백40만원의 떡값을 돌렸거나 돌리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이 자료에는 은행별로'떡값' 지급 대상자의 이름과 액수가 적혀있다.이 명단에 따르면 한보측은 시설자금의 대출창구였던 S은행 임직원 10명에게 2천4백만원,또다른 S은행 직원 9명에게 1천6백20만원의 지급계획을 세웠다. 〈표 참조〉

또 H은행 5명 1천2백30만원,B은행 4명 2백10만원,K은행 11명 1천7백20만원,D보험 7명 5백60만원,D증권 관계자 5백만원,H보험 관계자 3백만원등이 포함돼 있다.한보측이 계획한 직급별 떡값 규모를 보면 부장 5백만원,부부장 1백만~2백만원,차장 1백만원,과장.대리 10만~50만원 선이다.이 명단에는 은행장이나 고위 임원들은 많이 포함돼있지 않았다.이는 금융기관 핵심간부들에게는 鄭총회장을 비롯한 그룹 최고경영진이 직접 로비에 나섰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 현재 한보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 간부들도 빠졌는데 이 명단이 작성된 93년 당시에는 거래관계가 거의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같은'떡값명세서'는 그간 만성적 자금수요 초과상태에서 '대출사례금'과'명절떡값'이 적지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鄭총회장이 신광식(申光湜)제일은행장과 우찬목(禹贊穆)조흥은행장에게 사례비 명목으로 각각 4억원씩 준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밝혀진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와 관련,S은행의 한 간부는“한보철강이 당진철강공장 건설과 관련해 집요하게 여러차례에 걸쳐 대출로비를 해와 이를 뿌리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해 한보측의 로비가 끈질겼음을 시사했다.

한편 지금까지 금융기관 일선지점에서는 거액여신 요청이 들어오면“자체적으로 결정내릴 수 없으니 본점의 여신담당 부장이나 임원들을 찾아가라”며 본점로비를 유도한 사례도 있었다.

해당은행선 否認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통상 명절이 되면 거래처에서 구두표등 간단한 선물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부담되는 액수의 떡값이 건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명단에 올라있는 은행 관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떡값을 전혀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S은행의 한 임원은“당시 한보측으로부터 대출금을 회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일체의 금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H은행의 한 임원도“한보와 신용거래한 적이 없는데 무슨 떡값을 받느냐”고 반문했다.이들의 부인이 사실이라면 한보는 리스트만 작성한뒤 일부 임직원에게는 돈을 건네지 않았거나 당사자들이 이를 거부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보그룹 재정본부에서 최근 퇴직한 모과장은 이에 대해“당시 돈을 전달한 사실에 대해 아는바 없다”며“만약 로비했다면 윗선에서 비밀리에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보그룹 재정본부 김대성(金大成)상무등 핵심간부 2명은 지난 1월말 한보그룹 부도 직후 싱가포르로 극비출국한뒤 아직 귀국하지 않고 있다. 〈경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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