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돈 양성화에 최우선 - 가닥잡은 금융실명제 보완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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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 실명제 보완대책은 강경식(姜慶植)부총리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고 할수 있다.핵심은 그가 82년 재무장관시절 처음 실명제를 추진했을 때부터 주장했던 이른바'도강세(渡江稅)'제도의 도입이다.또한 89년 노태우(盧泰愚)정권에서 다시

추진했다가 사장됐던'점진적 실명제'와도 맥을 같이 한다.실명제를 추진하되 과거를 묻지 말자는 것이 기본틀이다.

여기에 덧붙여진 것이 자금세탁방지법 입법이다.금융실명제를 좀더 경제논리로 궤도수정을 하되 돈세탁을 형사처벌하는 별도의 법을 만들어 사회정의 차원의 일반여론에도 부응하자는 것이다.어쨌든 자금세탁방지법 제정으로 실명제의 명분을 지키면

서 동시에 비실명자금에 대한 숨통을 터주자는 것이 골자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중소기업 창업자금등에 대한 자금출처 면제다.물론 자금출처를 밝히면 과징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문제는 그렇지 못한 돈이다.

이 경우 일정수준의 과징금을 물리는 대신 출처조사는 눈감아주겠다는 것이다.과징금은 증여세 최고세율인 45%보다 약간 낮은 선에서 정해질 것으로 재경원은 보고 있다.

그러나 너무 높다는 시비가 일 가능성이 많은 대목이다.

정부는 또 이 제도의 실시기간을 올 하반기 6개월정도 한시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다.82년 2백억원이상의 자본금으로 단자사를 설립할 경우 과거를 묻지 않는 정책을 폈던 것과 같은 방법이다.

자금출처를 묻지않는 다른 방안으로는 분리과세 확대 조치다.즉 저축이자에 대해 금융소득종합과세 최고세율인 40%를 물되 분리과세받겠다고 금융기관에 신고하면 종합과세에서 빠지고 국세청에도 통보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상 40%의 과징금을 물고 자금출처 조사를 면제받는 셈이다.재경원은 자금출처 조사를 면제받을 요량으로 분리과세(20~25%)보다 더 많은 40%의 세금을 내면 이는 오히려 종합과세 대상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어 종합과세 강화라고

밝혔다.어쨌든 이번 조치로 금융거래 내용이 국세청에 통보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대상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자금세탁방지법이 어떻게 집행될지도 주목거리다.범죄나 부정.비리에 연루된 자금을 세탁했다가 걸리면 자금세탁방지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이 법이 제대로 작동해야 실명제의 가장 큰 허점인 차명예금을 막을 수 있다.돈세탁과정

에는 대개 차명계좌가 동원되기 때문이다.전직대통령 비자금 사건때도 차명계좌를 처벌할 수 없어 문제가 됐었다.미국의 경우 돈세탁으로 걸리면 최고 20년 징역이라는 중형이 내려진다.하지만 범죄와 연결되지 않은 관행상의 차명계좌는 앞으로

계속 적발하기도,처벌하기도 어렵게 돼 있다.

어쨌든 그동안 논란을 거듭해 왔던 실명제 보완문제가 일단락된 셈이다.그러나 앞으로도 산 넘어 산이다.

정치권과 재계는 무기명 장기채등의 도입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는 반면 금융실명제에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이 만들어졌다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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