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총력전 → 민간전’ 달라진 전쟁 개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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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쟁의 패러다임
루퍼트 스미스 지음, 황보영조 옮김
까치, 488쪽, 2만3000원

지은이는 40년간 영국군에 근무하면서 시기와 출동지역에 따라 군이 맡은 임무가 너무도 다르다는 데 주목했다. 명령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작전도 조직도 완전히 달라져야 했다.

냉전 시대를 보자. 영국군을 비롯한 나토군은 총력전에 대비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 서유럽을 방어하면서 바르샤바 동맹군의 기동부대를 파괴하는 게 임무였다. 그동안 미국 공군이 폭탄과 핵무기를 동원하여 소련 중심부를 공격해 전쟁을 끝내는 게 작전이었다.

1991년 걸프전에서 서유럽 군대는 독특한 전쟁을 치렀다. 상대를 눌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제한적인 국지전으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기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도 상대방 기동부대를 파괴한다는 개념은 똑같았기 때문에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95년 내전에 휩싸인 보스니아에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된 서유럽군이나 종교 분쟁에 휩싸인 북아일랜드에 주둔한 영국군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 노출됐다. 작전의 개념은 물론 무력사용 방식도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달라야 했다. 분쟁 당사자 사이에 완충지대 노릇을 하는, 이른바 경찰력 지원 임무였다. 군은 모든 행동과 사고방식을 바꿔야 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상황에 주목해 ‘민간 전쟁’이라는 현대전의 새로운 개념을 도출해냈다. 나라끼리가 아닌 특정 집단과 싸우고, 싸우는 목적이 수시로 바뀌고, 주민들 속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한편, 전쟁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도 알 수 없다는 게 이 전쟁의 특징이다. 전차, 항공모함 등 거대·고가 무기체계보다 구식 총 한 자루가 더욱 효과적인 독특한 전쟁이기도 하다. 게릴라전, 테러전 등 지금도 진행 중인,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여러 현대전이 모두 이런 특징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이 책이다. 군대가 쓰는 무력의 유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유동성과 변화가 필수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고가 장비, 중장비에만 치중하는 냉전시대 사고에서 벗어나 더욱 가볍고 유동적이며, ‘민간 전쟁’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군도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걸프전에서 기갑사단을, 95년 보스니아에선 유엔 평화유지군을 각각 지휘했다. IRA 테러에 대비하는 북아일랜드 주둔군 총사령관과, 나토 부사령관을 지내고 2002년 전역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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