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野 예뻐 표 줬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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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인천과 수원의 보궐선거 결과가 야권을 흥분시키고 있다.그럴만도 하다.국민회의와 자민련 연합공천 후보가 얻은 유효 득표율은 13대 총선이후 수도권 선거에서 기록한 최고 득표율이다.두 곳 모두 전체 투표자의 50%이상이 야당 단일후보

를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지역에 근거한 지역당 체제로 총선을 치른 이후 이처럼 높은 득표율은 없었다.“보궐선거는 여당이 강하다”는 징크스가 다시 한번 깨졌다.여당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정부 출범 후 처음 치른 광명등 3개 보선에서 3전전승한뒤 계속 하

향 곡선을 그리다가 이번엔 2전2패로 완패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이번 선거는 야당이 잘해서 이긴 선거인가.엄밀히 말하면 여당이 잘못해 '거저'주운 것일 수 있다.선거 기간중 인천에서 만난 40대의 택시기사는“한보사탠지 사건인지가 돌아 가는 꼴을 보면 분통이 터져 잠을

못이룰 지경”이라고 했다.옷가게를 한다는 30대 여성은“대통령이 칼국수 안 먹어도 좋으니 장사나 잘 되게 해주면 좋겠다”고 나무랐다.

국민들이 이처럼 현 정부의 비리의혹과 실정(失政)을 통탄하는 사이 야당은 뭘 했는가.산뜻한 집권 대체세력으로서 정책 대안을 보여주었는가,고결한 도덕성을 보여주었는가.

권노갑(權魯甲)의원의 수뢰에 대해 權의원과 야당 총재는 응분의 책임을 지거나 정식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청와대 못지 않게 야당도 측근정치.가신(家臣)정치.인척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여론에 침묵했을 따름이다.

대통령 일가를 향한 비난의 바닥에는“기성 정치권은 다 똑같다”는 따가운 여론이 자리하고 있음에도 꿀먹은 벙어리마냥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단지 야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매를 덜 맞고,여당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반사적 지지를 받는데 만족한다면 앞으로의 정치적 형편이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질게 없다.상대의 실책만으로 정권을 차지한 사람은 없었다.

두 야당 총재는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결과를 큰 빚으로 여겨야 한다.그리고 내각제를 미끼로 한 지역간 연합등'테크닉의 정치'보다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감동의 정치'를 우위에 놓아야 한다.

야권 공조의 위력에 자아도취하기 앞서 정치의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야권 공조는 방법론이자 수단이다.비전 제시 없이,제 살을 베는 결단 없이 기교에 의존하는 것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정치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국민들이 반사적으로라도 기호 2번을 찍어준 지금,과감한 자기 쇄신의 면모를 보이지 않으면 분노의 화살은 언젠가 야당에도 돌아갈 것이다.

<김현종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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