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의현장>슈타이너학교 下. 씨뿌려 김매고 농장서 체험학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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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슈타이너학교의 또다른 특징은 '집중수업'이다.한 과목을 한달내내 매일 2시간씩 집중적으로 가르치고는 한동안 그 과목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한달동안 열심히 배운 내용들을 죄다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는지 몹시 궁금했다.

“잊어버려야지요.사람이 낮에는 열심히 움직이고 밤에는 잘 쉬어야 건강하듯이 무엇이든 공부한 다음에는 한동안 잊어버려야 합니다.뭔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도 한숨 푹 자고나면 명쾌한 답을 얻는 경험을 해보셨지요?”바젤 슈타이너학교

로널드 템플턴 교사의 설명이다.

예컨대 슈타이너학교 3학년생들은 농장에서 밀을 직접 파종하고,김매고,거름주고,거둬들여 빵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나면 농작물이 자라는 과정과 원리뿐 아니라 실생활에 활용하는 방법까지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며,이와 관련된 흙.물.영양.햇빛.요리.계절의 변화등을 온몸으로 골고루 익히게 되는 것이다.

문자교육도 특이하다.예컨대 알파벳 f를 가르칠 때도 슈타이너가 창안한'포르멘(Formen:모양그리기)'과'오이리트미(Eurhythmie:좋은 율동)'라는 독특한 신체표현활동으로 익히게 한다.또 살아있는 물고기(fisch)와 연관지

어 가르친다.

개념을 기호로 나타내는 과정(그림-기호-단어-읽기)을 거쳐야 문자를 죽은 기호로 외우지 않고 인간의 마음을 담아 살아있는 문자로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슈타이너학교에서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단계별로 가르치는 포르멘은 자연의 동.식물에서 찾아낸 모양이다.

1학년이 그린 포르멘은 단순하고 일정한 규칙이 있다.

5학년의 포르멘은 무척 복잡하고 정교한데 그 나름의 일정한 규칙대로 그리다 보면 어느새 줄로만 이어진 멋진 그림이 나타난다.

슈타이너학교 교사들의 활짝 열린 마음과 태도,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그리고 놀랍도록 뛰어난 교수능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우리 일행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그야말로'끝없는 교사교육'에 있었다.우선 슈타이너학교 교사가 되려면 어떤

학위나 자격을 갖추고 있든간에 2년동안 슈타이너 교사양성소에 다녀야 한다.

또 언어기술을 공부하기 위한 별도의 4년과정이 따로 있다.오이리트미를 익히기 위한 별도의 6년과정도 있다.

현재 전세계 50여개국에 세워진 슈타이너 교사양성소는 60여개에 이른다.이런 양성소는 슈타이너교사의 기본 자질을 길러주는데,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슈타이너학교 교사가 된 뒤에도 계속되는 현장 연수다.슈타이너학교에서는 매주 한차례

학년별 교사모임과 전체 교사모임을 갖는다.

모든 교사가 참가하는 이 모임은 토의하면서 더 나은 교육방법들을 서로 익히기 위한 것이다.

또 여름과 겨울엔 슈타이너교사연맹이 마련하는 교사연수에 참가해 각자 연구.실천한 교수방법들을 발표한다.

교사연수에는 전직 슈타이너학교 교사들이 참여,지도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슈타이너학교 교사들의 진지하고도 열성적인 태도야말로 우리 교육현장을 활짝 열어젖히고 싶어하는 한국의 교사들이 배우고 실천해야할 점이 아닌가 싶다. 이주영〈서울성자초등학교교사〉

<사진설명>

체험학습을 중시하는 슈타이너학교 학생들이 직접 재배한 밀로 과자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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