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양원주부학교 71세 김옥순 할머니 4년 개근 '감격의 졸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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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3시간여 걸리는 통학길도 공부하는 재미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26일 오전10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양원주부학교 졸업장을 받아든 김옥순(金玉順.71.경기도이천시대월면대흥2리)할머니는 감회가 남다르다.

뚝섬에서 태어나 일제치하에서 경동초등학교를 졸업한뒤 1남3녀의 형제자매중 오빠만 고등교육을 받았고 金할머니는 중학교 진학을 못했다.“여자가 무슨 교육이냐”고 하시던 부모님 말씀을 순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20세 되던 해 공무

원으로 근무하던 최진옥(崔鎭玉.75)씨에게 시집와 3남3녀와 남편 뒷바라지에 40여년의 세월이 후딱 흘러가버렸다.

그러던 金할머니가 주부교육기관인 마포구염리동 양원주부학교(교장 李善宰)에 입학한 것은 큰손녀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 93년.

배움의 기회를 놓친 한을 뒤늦게나마 풀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등교는 1주일에 세번.등교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오전4시30분에 일어나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본뒤 도시락을 싸 집을 나서면 오전6시에서 6시30분 사이.20분 넘게 걸어 마을버스를 탄뒤 다시 서울행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염리동

학교에 도착하면 오전9시50분.아침수업 시간에 맞추는 것도 빠듯하기 일쑤였다.그러나 2백여리 등교길에도 4년동안 하루도 결석한 적이 없다.버스와 전철안에서 열심히 한자.영어단어를 외웠다.집안 곳곳에 한자를 적어놓고 수시로 봤다.오

전2시까지 복습한 것도 부지기수.큰손녀가 어려운 영어와 수학을 많이 도와줬다.

“나이가 많다고 주위에서 비웃는 것같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새로운 걸 배우는 재미에 그만두지 못하겠더군요.”

그동안 각 1년기간인 중등.고등.전문.교양부 4개 과정을 모두 마쳤다.이날 졸업식에서 개근상에다 모범상.한자읽기 능력상까지 탄 金할머니는“그동안 묵묵히 지켜봐준 남편과 자식들에게 감사한다”면서“내친김에 연구부 과정까지 공부하고 싶

다”고 환한 웃음과 함께 포부를 밝혔다.

82년 설립돼 지금까지 1만6천여명의 주부졸업생을 배출한 양원주부학교의 이날 졸업식에서는 중등 6백67명,고등 3백61명,전문 1백57명,교양 1백21명,연구 67명등 모두 1천3백73명이 졸업했다. <최지영 기자>

<사진설명>

김옥순할머니가 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고 며느리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방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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