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고 지성이 만든 영화 '낮과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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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신철학(新哲學)'의 기수로 전후세대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BHL.49)가 영화감독으로 나선 알랭 들롱 주연의'낮과 밤(Le Jour et La Nuit)'이 최근 개봉돼 프랑스를 들끓게 하고 있다.멕시코에서

올로케이션하는 바람에 개봉직전까지 영화 내용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작품이 개봉되자마자 BHL에 관한 기사들과 그의 정부 아리엘 동바슬과 함께 과감한 섹스신을 보여준 들롱의 사진이 온통 프랑스의 인쇄.방송매체들은 물론 프랑스 국

내 인터넷까지 뒤덮고 있다.

BHL은'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자유의 체험'등의 저서로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철학을 지양하고 지식인의 대중 포섭과 행동주의를 내세우는 이른바'신철학'을 주창하면서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는 인물이다.철학

서 뿐만 아니라 소설.에세이.희곡등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BHL은 상업적인 애정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의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연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는 남미 멕시코의 한 해변도시.창작열이 식어 이곳을 도피처로 은둔생활을 하는 대문호인 알렉상드르(들롱)는 인생에 환멸을 느낀채 삶을 이어간다.

어느날 자신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하겠다며 영화제작자와 여배우(동바슬)가 찾아오면서 심적 변화가 일어난다.진정으로 사랑하는 여배우에게 사랑의 불꽃이 다시 피어나고 새로운 삶을 찾겠다는 의지도 되살아난다.그 순간 예기치 않은 사

고로 여배우가 죽자 자신도 자살한다는 것이 줄거리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열기구 풍선에 몸을 실어'무자비하게 작열하는 멕시코의 태양'을 향해 공중산화하는 들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이지만 예술영화에서 자주 사용된 상투적 연출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더구나

육체파 여배우인 자신의 정부를 불필요하게 자주 클로즈업하거나 관객들이 썰렁하게 반응하는 코믹한 장면등은 경험없는 영화감독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

이 영화는 작품 자체와는 상관없이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언론플레이의 귀재로도 꼽히는 BHL은 시사회에서 비평가들은 완전히 배제하고 기자들만을 초청해 개봉전부터 가십의 대상이 되었다.들롱은 그동안 출연한 영화마다 번번이 흥행에 실패하는 바람에 주가가 떨어져있던 상태였다.그에게는 부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회심의 작품인 동시에 그의 매력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오랜만에 그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파리=고대훈 특파원]

<사진설명>

멕시코의 작열하는 태양밑에서 자신의 영화'낮과 밤'제작에 열중인 프랑스

신철학의 기수 베르나르 앙리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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